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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헤이안 시대의 불교전개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5.05.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진호국가의 성격을 띤 나라시대의 불교
ⅰ. 국가의 보호를 받는 불교
ⅱ. 남도육종
ⅲ. 나라불교의 폐단
Ⅱ. 헤이안불교의 조류
ⅰ. 새로운 불교의 유입
ⅱ. 최징의 천태종
ⅲ. 공해의 진언종
ⅳ. 헤이안 불교의 전개와 특징

본문내용

‘다이카 개신’이라는 대규모의 정치 개혁이 단행되어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국가로 확립되었다. 국가적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여유가 생긴 권력자는 이제 문화의 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하여 8세기 후반 당시의 45대 성무천황은 적극적으로 당나라의 문물을 수입하였다. 특히 그는 불교를 깊이 신앙하여 전국 각지에 관립사찰(國分寺 , 國分尼寺)을 세웠고 그 센터로서 나라에 도다이지(東大寺)를 건립하고 거기에 대 불상을 조성했다. 즉 나라 시대(奈良; 710∼784)의 불교란 국가 사업 그 자체였다. 불교 최대의 사명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호국가(鎭護國家)’에 있었으며, 따라서 승려들 또한 불교의 가르침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나라 시대 불교는 일본 민족이 고대통일국가를 형성 ․ 확립하는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불교는 정치적인 통일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진호국가를 위한 불교라는 성격이 두드러졌다. 그 결과 나라불교는 교리의 이해에서는 불교계의 지식인들의 불교에 머물렀으며, 한편으로는 국가불교로서 정치적인 지배자인 천황 ․ 귀족들이 신봉한 귀족불교였다. 즉 불교교학의 연구는 사원 내부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당시 불교의 대세는 진호국가라는 현세적 주술의 틀 안에 머물렀다. 그래서 사원 이외의 지역에서는 종교활동이 금지되었고, 승려도 국가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관승(官僧)으로 한정되고, 병의 치료나 죄복을 설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진호국가의 불교로서 금광명경최승왕경 등의 호국 경전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승려의 활동이 국가의 강한 통제를 받았으나, 교오키(行基; 668~749) 교키는 백제계 도래인의 자손으로, 국가에서 금지한 민간포교를 행하여 민중들 사이에 인망을 모았기 때문에 탄압을 받았다. 도다이지의 대불조영시에는 민중을 이끌고 협력하기도 했다
와 같이 민간포교를 행하고 농민을 위해 용수시설과 교통시설을 만드는 등 사회사업을 하는 승려도 나타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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