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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시대 양반여성 문화

저작시기 2003.06 |등록일 2005.05.09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 | 25페이지 | 가격 8,0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양반)여성에 관한 "파워포인트"자료입니다. 서울대 한국사 수업시간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슬라이드 내용외에, 슬라이드내용에 관련된 설명이 아주 상세하게되어있어 초보자도 발표가능합니다.
내용이 지루하지 않도록 "가공의 한여인"의 일대기 형식으로 꾸민 자료이며
다양한 책을 활용, 당시 실재있었던 사건도 수록하였습니다.
각파트별로 인원배정해서 조별발표로도 가능

물론 내용만 편집해서 리포트로도 사용가능합니다.
정확한 주제는 물론
한국사나 문화인류학 등 관련 부분수업의
자유주제 레포트로도 사용가능합니다.

받아보시고 절대 후회 안 하실 자료입니다.

혹시 의문사항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

목차

조선시대 (양반)여성의 일상생활문화

1. 양반여성의 교육
2. 결혼풍습
3. 봉제사
4. 처첩갈등
5. 아들선호현상
6. 태아감별법
7. 분만법
8. 질병(마마)
9. 칠거지악
10. 삼불거
11. 첩(씨받이)
12. 재혼금지(열녀문)
13. 회혼례

본문내용

7번 슬라이드: 조선시대 남아선호현상
1슬라이드 본문:남근석 여근석 코가 없어진 돌부처사진+본문내용
2슬라이드노트 내용
중요한 아들: 17세기를 전후하여 성리학이 지배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면서 조선에는 철저한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자리잡게 되었다. 조선시대에서 아들은 집안의 대를 잇고 제사를 모시는데 꼭 필요한 존재로 중시된다. 하지만 딸은 이 모든 것에서 제외되어 딸을 많이 낳은 집에서는 딸의 이름을 ‘후남이’, ‘순남이’ 등으로 하여 다음에는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며느리가 아들을 낳고 못 낳고는 그 집안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아들을 못 낳는 것을 큰 불효로 여겨졌다.

비숍-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한국의 아내들은 아들을 낳는 순간 그 지위가 격상된다. 아들의 탄생은 엄청난 경축의 기회를 제공한다. 첫 아들에게 이름이 지어진 뒤 그 어머니는 ‘누구누구의 모친’이라는 경칭을 얻으며 시댁에서의 발언권이 확실해진다.

아들을 잘 낳는 몸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잘 낳는 몸매가 있다고 여겼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아들 잘 낳는 여인은 ‘얼굴이 거위알처럼 생기고 배꼽은 깊숙하고 뱃살은 두꺼우며, 엉덩이는 펑퍼짐하고 배가 커야 한다.’고 나와 있다.

아들 낳는 비법: 여자들은 오행의 기가 왕성한 귀숙일이라는 씨내리는 날을 은밀히 외우곤 하였다. 이 날 합방을 하면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산과 강, 해 달 별 등 신령한 존재가 깃들어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기도하거나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으려고도 하였다. 특히 남근 모양의 ‘아들바위’에서 치성을 드렸으며 남성의 상징으로 관념화된 돌부처의 코를 갈아서 물에 타 마시기도 하였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산모의 옷이나 월경대를 몸에 두르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기도 하였다.

20번 슬라이드:삼불거
1.슬라이드 내용:돌아갈곳이 없는 아내
가난했던 집안을 일으킨 아내
남편과 함께 시부모삼년 상을 치른아내
2.슬라이드노트내용:
칠거지악을 저질렀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는 아내, 남편과 함께 시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아내, 가난했던 집안을 일으켜 놓은 아내는 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어지간하면 이혼이 용납되지 않았다.
세종 때 이미라는 사람은 아내 최씨가 45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자 무자라는 이유로 내쫓고 강씨에게 새로 장가를 들었다. 그러자 최씨의 친정 아버지 최주가 사헌부에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이미는 조상님께 자손을 잇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며 항변하였지만, 조정의 처분에 따라서 강씨는 돌려 보내지고 전처 최씨가 돌아오게 되었다.
실제로 기록에 남아있는 이혼 사례들 중 무자라는 이유로 이혼이 허락된 예는 없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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