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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김창숙의 반이승만투쟁과 정치문화

저작시기 2005.05 | 등록일 2005.05.0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머리말
2.해방 3년기의 활동
3.1950년대 후반 반독재 투쟁
4.통일관과 4월혁명정신의 구현
5.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해방 후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은 하지 주한미군사령관의 자문기관인 남조선대한민국대표민주의원, 김구가 이끈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유도회총본부 위원장, 성균관장 등을 역임했고, 1961년에 조직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위원장이었다. 이밖에도 일시적 목적으로 만든 단체에 고문 등으로 올라가 있고, 1956년과 1960년 4월 혁명기에 혁신정당 결성과정에 이름이 나오지만, 어떠한 정당에도 가입한 바가 없었고, 조직적· 지속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는 상당한 정치적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특히 1950년대 그의 발언은 반향이 있었고 유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원로로서 김창숙의 정치적 위상이 높았던 것은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성과 사회적 영향력이 있던 유교계의 대표라는 것 이외에도 강직함에서 나오는 강도 높은 비판정신이 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50년대에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승만 대통령 하야 또는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를 주장했으며 자유당을 망국당· 도국당(盜國黨)· 멸종당(滅種黨)등으로 부르기도 했고, 때로는 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하는 등 ‘순수 원리주의자(급진적인 근본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방 후 김창숙의 활동 중에서 해방 직후의 반탁 투쟁과 1950년대 후반의 이승만 독재 반대투쟁도 두드러지지만, 남북협상기에서 4월 혁명기까지 이어지는 통일염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사실들을 김창숙이 지은 『벽옹 73년 회상기』와 『국역 심산유고』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참고 자료

서중석,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역사비평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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