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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의 근 ․ 현대사를 결정지은 일대사건 동학혁명의 발자취를 따라서

저작시기 2004.06 |등록일 2005.05.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지역문화재를 답사한 후, 그 감상과 역사적 문화적인 배경에 대하여
조사를 하는 숙제입니다. 자료를 수집한 후 분석함으로써 얻어진 지식
들로 글을 썼습니다.

목차

1. 갑오동학혁명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2.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인물과 동학사상
1) 전봉준
2) 손화중
3) 김개남
4) 동학사상
3.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항쟁은 일본침략군을 이 땅에 몰아내기 위한 민족자주의 반외세항쟁이었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양반 지배층은 권력과 조세 제도의 문란을 이용하여 농민을 억압하고 더욱 심하게 수탈하였다. 이에 농민계급은 양반지주를 상대로 싸우면서 사회의식과 힘을 키워나갔다. 1876년에 조선이 개항한 뒤 지주층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며 부를 쌓고 토지를 넓혀갔지만 반면에 농민들은 더욱 빈곤해졌다. 또한 외국 상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규모가 작았던 국내의 수공업마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리하여 막연하게나마 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정부의 개혁을 요구해야겠다는 기운이 전국으로 퍼져갔고, 민중종교인 동학을 받아들이면서 농민들은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게 되었다.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과 같은 농민 지도자들은 동학의 조직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부지역은 호남제일의 쌀 생산지이며 농산물 집결지였다. 뿐만 아니라 서해안(고창․부안․곰소 등)을 끼고 있어 해산물 또한 풍부하였다. 그런 만큼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봉건적 수탈과 일제의 경제적 침략이 극심한 곳이었다. 이러한 때에 부패의 하수인이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농민들에 대한 압제는 마침내‘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처럼 고부농민 봉기를 촉발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조병갑은 당시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삼정의 문란을 이용한 수탈 외에도 기상천외한 수법 으로 수탈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 한가지로 농민들의 땀의 댓가로 세워진 만석보 축조를 빌미로 수세를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그 밖에도 각가지의 불합리한 조세수입을 올렸다.
마침 1893년은 극심한 흉년이 들어 그해 11월 40여명의 농민들이 고부 관아로 몰려가 만석보의 수세 감면을 진정하였으나 조병갑은 오히려 양민을 선동하는 난민이라 하여 그 가운데 대표자 몇 사람을 구금하였다. 이로 인하여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지고 전봉준등 20여명은 송두호의 집(고부 신중리 죽산마을)에 모여 고부군수 조병갑 외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전주성을 함락한 후 한양으로 진격한다는 거사 계획을 결의하였던 것이다.
사발통문계획이라고도 일컬어진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공격목표였던 조병갑이 전임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열한 재취임 공작 끝에 조병갑은 재부임을 하게되어 결국 고부농민봉기를 자초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1894녀 고부에서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항거하여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에서 파견한 이용태가 조병갑을 두둔하고 농민군을 역적으로 몰자,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지도자들은 동학 접주들과 논의하여 무장에서 봉기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1.『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사회사적 연구』 정진상. 서울대학교. 1992
2. 네이버 백과사전
3.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 - http://mongk23.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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