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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 선사유적지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5.05.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국리 선사 유적은 한국 청동기 사회 고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사 유적으로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성격의 집터와 무덤 그리고 토기들이 발굴 되었다.
이 유적은 청동기 문화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발굴 조사된 무덤과 출토 유물 등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

Ⅰ.머리말.
Ⅱ. 송국리형 토기 (松菊里型土器).
Ⅲ. 송국리형 주거지.
Ⅳ.송국리 유적의 무덤과 출토유물.
Ⅴ.고찰.
사진

본문내용

Ⅰ.머리말.

- 부여군 초촌면의 송국리 유적 일대는 금강 지류인 석성천가에 펼쳐진 평야지대로 나지막하게 뻗어 있는 구릉지대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기시대의 취락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이 송국리 유적은 요녕식동검이 출토된 석관묘와 송국리형 토기 토기는 옹관묘에 쓰인 것과 주거지에서 발견 된 것이 있는데 주거지에서 발견된 유물은 무문토기시대의 각종 유물이 거의 망라되고 있으며, 특히 토기는 민무늬토기, 붉은 간 토기가 중심을 이루고 민무늬 토기 중 ‘松菊里型土器‘ 불리는 독특한 토기가 발견 되었다.
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무문토기, 그리고 독특한 형태의 송국리형 집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75년도에 이 일대는 당시 농수산부의 농지확대 개발 사업지구로 선정되어 개간 작업이 이루어질 계획이 수립된 바 있다. 이 지역의 고고학적 중요성을 그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유적이 파괴되기 전에 긴급조사를 실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백제,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다수의 유적, 유물이 조사되었으며 발굴조사는 그 후 1978년도까지 매년, 총 4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중 1977, 78년도의 발굴조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국한되었다. 당시의 조사내용은 이미 학계에 보고 되었으며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특히 청동기시대유적에 대한 조사는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에 관한 많은 자료가 축적 되었으며 인근지역의 무문토기문화연구에도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국립중앙박물관,『송국리Ⅱ』,1986,pp. 1-18.
-국립중앙박물관,『송국리Ⅲ』,1987,pp.1-50.
- 국립공주박물관,『송국리Ⅴ』,1993,pp. 201- 209.
- 신상효, 1996,「송국리형 주거지의 복원적 고찰」,『호남 고고학보』pp.1-33.
- 韓國의 先原史土器,『國立中央博物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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