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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 삼부통합 후 조선혁명군과 조선독립군

저작시기 2005.05 | 등록일 2005.05.0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삼부통합운동, 조선혁명군, 조선독립군에 대해서 자세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1)참의부의 성립
(2)참의부의 항일전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1)정의부의 성립
(2)정의부의 항일전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1)신민부의 성립
(2)신민부의 항일전
4. 삼부통합운동
5. 조선혁명군의 조직과 활동
(1)조선혁명군의 조직
(2)조선혁명군의 항일전
6.한국독립군의 조직과 활동
(1)한국독립군의 조직
(2)한국독립군의 항일전

본문내용

(2)조선혁명군의 항일전
조선혁명군은 만주의 중국군벌과 합작, 연합항전을 전개하는 것으로 활동방향을 설정하였다. 하지만 한중합작이 성사되기전 조선혁명군은 대타격을 받게 되었다. 하나는 한중합작을 협의하기 위해 심양에 갔던 현익철이 일제 주구의 밀고로 체포된 것이고, 또 하나는 신빈현에서 회의도중 일본군의 급습을 받은 것이다. 이 사건이후 당과 군의 내부에서는 중국관내로의 이동여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되었다. 관내이동을 반대한 그룹은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하여 대일무장항전을 전개해나갔다. 신빈현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국의 농민자위대 양석복부대와의 연합을 시작으로, 영릉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한 영릉가전투 ∙ 신개령전투 등을 비롯하여, 신빈현 ∙ 환인현 ∙ 집안현일대에서 수많은 전투를 수행하였고, 이후 1938년 9월 조선혁명군 총사령 김활석이 체포될 때까지 8년여 간 계속되었다. 1932년 10월 당취오부대가 일본군의 추기공세에 밀려 관내로 이동한 후, 조선혁명군은 왕봉각이 영솔하는 요동민중의용군과 등철매부대와 연합하여 양세봉 지휘하에 흥경현성을 습격 점령하는 등 전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2)한국독립군의 항일전
1932년 이사 ∙ 정초 등이 이끄는 길림성위군과 호로군, 왕덕림의 길림구원군, 고봉림 ∙ 오의성 ∙ 자세영 등과 연합하여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933년 말까지 2년여 동안 한국독립군은 쌍성보전투 ∙ 경박호전투 ∙ 사도하자전투 ∙ 동경성전투 등 일본군 73연대인 판총연대를 거의 섬멸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33년 말에 들어 한국독립군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1933년 10월 13일 중국의 오의성부대와 연합하여 작전을 준비하던 중 오의성부대가 한국독립군 총사령부를 기습 포위하고, 총사령 이청천 이하 330여 명의 한국독립군을 체포 구금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대전자령전투에서 노획한 무기를 연합한 중국의 자세영부대와 분배하는 과정에서 대립도 한 원인이 되었지만, 중국공산당의 밀령을 받고 파견된 중국공산당만주성위원회 서기인 주보중이 오의성부대의 참모로 있으면서 한국독립군의 무장을 해제한 것이었다. 오의성이 주보중의 음모임을 알고 10월 하순 한국독립군 간부들을 모두 석방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상당수의 세력이 흩어졌고, 한국독립군은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곤경에 처해있을 때, 김구로부터 관입이동에 대한 제의가 전달되었다. 김구는 장개석의 협조를 얻어 낙양군관학교에서 이청천을 교관양성 책임자로 하고 한국독립군을 비롯한 만주지역 한인청년들의 입교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한국독립군의 중국관내 이동이 결행되었다. 총사령 이청천을 비롯하여 오광선 ∙ 이복원 ∙ 공진원 등 한국독립군 간부와 군관학교 입학지원자를 포함하여 39명이 남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와함께 한국독립당도 중앙집행위원장 홍진을 중심으로 하여 관내지역<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윤병석 외 5인, 중국동북지역 한국독립운동사,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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