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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베르사이유 조약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5.04.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베르사이유 조약에 관한 자료가
잘 요약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의 자료를 통해 학문의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목차

1. 집단안전보장체제

2. 베르사이유체제의 형성

3. 독일의 베르사이유 체제 붕괴

4. 베르사이유체제의 평가

5. 제 2차 세계대전

본문내용

베르사이유체제의 내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제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따라서 제국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38년부터 39년에 걸쳐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하고 소련과는 불가침조약을 맺는 등 팽창의 야심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는 독일의 행동을 견제하지 않고 방치하였으며, 1939년 독일의 폴란드침입과 함께 유럽 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된다 (1939). 4개년 계획으로 군비확장에 주력해 온 독일은 단찌히와 서부 폴란드를 병합했고, 소련도 동부폴란드와 발트 3국 등을 점령했다. 이탈리아의 발칸진출이 용이치 않았던 반면, 독일은 승승장구로 서쪽의 덴마아크, 노르웨이, 네덜란드에 이어 마지노 방어선만 믿고 소극적으로 항전하던 프랑스까지 점령해 비시 괴뢰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소련을 제외한 유럽대륙을 장악했다. 그러나 처칠이 지도하는 영국의 치열한 항전, 드골이 지도하는 자유프랑스군과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의 저항, 미국의 참전 및 소련과의 이해갈등 속에서 패전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보장받기 위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으나(1941, 11), 1942년 여름 이후 다른 추축국가들과 함께 역전의 국면을 맞았다. 이에 따라 연합국의 수뇌들은 카이로(1943), 얄타(1945, 2), 포츠담(1945, 7) 등지에서의 회담을 통해 전후 국제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얄타회담에서는 소련의 참전이 결정되어 향후 국제질서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뭇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이탈리아가 추축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후(1944, 6), 독일(1945, 5)과 원자탄이 투하된 일본이 항복하면서(1945, 8) 2차 세계대전은 종식됐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질서는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베르사이유 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이 대동화 전쟁(태평양)이다. 이렇게 하여 촉발된 제 2차 세계대전은 1945년 연합국의 승리로 종전을 맞게 된다.

참고 자료

김순규 역저 신정치 외교사, 박영사
이기택 국제정치사, 일신사
통합외교사, 도서출판 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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