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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삼국사기 열전 인물 유형및 요약

저작시기 2004.10 | 등록일 2005.04.2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삼국사기 열전 요약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김유신(金庾信)은 왕경 사람이다. 유신(庾信)이 15세에 화랑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기꺼이 복종하니, 그 무리를 용화향도라 하였다. 진평왕 건복 28년(611) 신미에 유신(庾信)의 나이 17세였는데,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이 나라의 강토를 침범하는 것을 보고, 의분이 북받쳐 적도들을 평정할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中嶽)의 석굴에 들어가 재계하고 하늘에 고해 맹세하였다. 유신(庾信)은 압량주군주로 있다가 선덕왕 13년(644)에 소판이 되었다.영휘 6년 을묘(655) 가을 9월에 유신(庾信)은 백제에 쳐들어가 도비천성을 공격해 승리하였다. 인덕 2년(665)에 당 고종이 사신 양동벽과 임지고등을 보내와 교빙하고, 아울려 김유신(金庾信)을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 ․식읍2천호로 책봉하였다. 함형(咸亨) 4년 계유(673), 즉 문무대왕 13년 봄에 요사스런 별이 나타나고 지진이 있자 대왕이 우려하였다. 이에 유신(庾信)이 왕에게 나와 “근자의 변고는 그 액운이 늙은 저에게 있사옵고 나라의 재앙이 아니오니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얼마후 유신(庾信)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우니, 대왕이 친히 왕림해 위문하였다. 가을 7월 1일에 사저의 정침(正寢)에서 죽으니 향년 79세였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자질이 침착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아울러 글을 지을 줄 알았다. 수 개황 연간에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쳤는데, 문덕(文德)은 왕명을 받고 수의 진영에 나와 거짓으로 항복했으니, 실제로는 그들의 허실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었다. 우중문은 문덕(文德)을 돌아가게 하였다. 이윽고 우중문은 깊이 후회해 사람을 보내 문덕(文德)을 속여 말하기를 “다시 의논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한번 더 오면 좋겠다”라고 했으나. 문덕(文德)은 압록수를 건너 돌아와버렸다. 문덕(文德)은 수나라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들을 피로하게 하고자 매번 싸울 때마다 번번이 달아났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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