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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의 라이벌, 수양동우회/흥업구락부

저작시기 2004.08 | 등록일 2005.04.26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 들어가며
* 조선 지식인과 자산가들의 대표적 두 집단, 동우회 vs 흥업구락부
* 관서-기호지방의 정치세력, 동우회 vs 흥업구락부
* 종교적 이질성, 동우회 vs 흥업구락부
* 경쟁관계의 극명한 표출, ‘적극신앙단 사건’
* 동우회/흥업구락부 사건 이후 비타협의 길을 걸어간 인물
-이만규, 안재홍, 최현배
* 마치며
* 참고문헌 목록

본문내용

들어가며

지난 5조의 ‘민족주의 운동’ 발표는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분화/이탈론’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계열이 벌인 여러 운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강의 시간을 통해 민족주의 계열의 좌/우파 구분이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지적받은 바 있다. 구분의 가장 큰 기준은 일제에 대한 타협과 비타협의 여부이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세력이라는 것이 그 성격과 구성원이 명확하지 않고 개개인이 어떤 노선과 행동을 취했는지 증명되지 않은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타협과 비타협에는 그 상황에 따른 요인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집단의 성격을 구분할 만큼 일관적인 것은 아니었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하였다. 자료를 검색하는 가운데 ‘역사비평’ 1998년 가을호에 실린 ‘김상태’의 ‘평안도 엘리트의 형성과 친미 엘리트의 형성’ 이라는 글을 읽고 흥미로운 연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핵심 엘리트들 중에는 평안도 출신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평안도의 기독교적, 개화 지향적, 친미적 성격 때문이라 보았다. 일제시기 평안도 세력이 정치 세력화 한 것이 ‘수양동우회’ 였으며, 이 평안도 세력은 해방 후 반공, 친미, 기독교적 성격으로 무장하고 남한 정부 수립에 주류 위치를 차지하다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4.19 이후 민주당 정권을 잡기도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후 경상도 세력에 밀려났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조는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브루조아 민족주의의 구도를 지역적 차이와 종교적 차이를 가진 두 대표 집단의 라이벌 관계로 그려보고자 하였다.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 두 단체의 지역적, 종교적 기반을 알아보고, 두 단체의 경쟁관계가 극명하게 표출된 사례로서 ‘적극 신앙단 사건’ 에 주목하였다. 또한 타협과 비타협은 집단을 구분짓는 기준이 되기에는 개인적이고 각 사안에 따른 입장에서 나온 것을 밝히기 위해 동우회, 흥업구락부 사건 이후 대다수가 친일로 전향할 때에 친일로 전향하지 않고 비타협의 길을 걸어간 인물인 이만규, 안재홍, 최현배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이들의 면면을 분석하여 새로운 공통점을 발견해내고자 시도하였다.

참고 자료

김상태, ‘1920~1930년대 동우회·흥업구락부 연구’, 1992
정병준, ‘조선건국동맹의 조직과 활동’ 한국사연구 8 , 한국사연구회, 1993
한국기독교사연구소 ‘한국 기독교의 역사’ 1990
김상태, ‘평안도 친미 엘리트층의 성장과 역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 제 51호,2001,9월
조배원, ‘수양동우회·동우회 연구‘,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논문, 1998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Ⅰ, 한길사, 1986, 76쪽
이균영, ‘1920년대 각종 사회단체의 형성과 민족운동’ 일제 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 , 한길사, 1988
오미일, ‘1910-1920년대 평양지역 민족운동과 조선인 자본가층‘, 역사비평 28, 1995
심성보, ‘교육사상가열전: 이만규의 삶과 교육사상‘ 교육비평 Vol. 16, 교육비평사, 2004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열전’ 3, 돌베게, 한영우선생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엮음, 2003
김석득 ‘외솔 최현배 학문과 사상‘, 연세대 출판부 2000
장규식 ‘일제하 한국 기독교 민족주의 연구’ 혜안 2001
김상태 ‘평안도 엘리트의 형성과 친미 엘리트의 형성’ 역사비평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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