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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에도의 여행자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5.04.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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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 론
II. 조선통신사와 선린 외교 여행
III. 지볼트와 나가사키~에도 여행
IV. 올콕과 후지 산 등산 여행
V. 결 론

본문내용

에도 바쿠후는 우리에게 소설 『대망』으로도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고 에도(현 도쿄)
에 수립한 정권이다. 도쿠가와의 성을 따서 도쿠가와 바쿠후라고도 불리운다. 에도시대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국 각지의 가도나 와키오칸을 끊임없이 오가며 여행하였다.
에도 바쿠후는 유례없는 200년간의 쇄국정책을 펼치는데,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쇄국정책 하에서 유일하게 통상을 하였던 나라인 조선과 네덜란드, 그리고 바쿠후 말기의 외세와 통상을 연 이후에 수교를 맺었던 영국 등에서 건너온 외국인에게 비친 일본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통하여 일본의 이면에 투영된 일본의 사회와 정치 모습 등을 글의 문맥(Context)을 통하여 밝히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II. 조선통신사와 선린 외교 여행
에도 시대에 쇄국체제하에서 유일하게 국교를 연 나라가 조선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국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타카하시 치하야, 김순희 옮김,『에도의 여행자들』,효형출판, 2004, p.263.
이었다. 조선과는 정식으로 국서를 교환하고 서로 국사(國使)를 파견하였는데, 메이지 시대 이후 조선을 지배하려는 정책으로 조선통신사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에게 있어서 한반도는 고대부터 줄곧 문화적 선진국이었다. 군사력에서는 일본에 뒤질 때도 있었지만 문예, 학술 면에서는 늘 앞서 있었다.
통신사 일행과의 교류는 일본의 지식인이 새로운 지식을 얻고 자신들의 학문을 인정받는 중요한 기회였다. 문화적 영향과 의의가 매우 컸던 것이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1682년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왔을 때 제술관 조선 시대에 의식에 필요한 글을 써 올리던 관직으로 승정원에 속해있었다. 타카하시 치하야, 위의 책, p.264.
성완에게 서문을 받고 기노시타 쥰안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에게로 천거를 받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타카하시 치하야, 김순희 옮김,『에도의 여행자들』,효형출판, 2004,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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