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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한국사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5.04.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500원

본문내용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 비문의 신묘년(391년) 기사를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당시 왜국의 한반도 남부 지배를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남조(南朝)·송(宋)·제(齊)·양(梁) 나라의 역사기록에 나오는 왜왕의 책봉기사도 들고 있다. 여기에는 왜왕이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諸軍事倭國王)”이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송에서는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듯한 칭호를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엄청나게 커다란 규모에서 우선 놀라게되는 이 비석은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長壽王, AD 413 ~ 491) 거련(巨連)이 그의 아버지(先王, 父王) 광개토왕(廣開土王, 永樂大王, AD 391 ~ 413) 담덕(談德)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서력기원(西曆紀元) 414년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碑石)은 광개토왕의 또 다른 별칭인 호태왕비(好太王碑)로도 불리는데, 원래의 명칭(諡號)은 국강상광개토경 (國岡上廣開土境, 또는 國岡上廣開土地) 평안호태왕비(平安好太王碑)이다. 즉 나라의 영토(領土)를 매우 넓게 넓혀놓은 왕으로서, 만 백성을 평안하게 만든 훌륭한 임금을 기리는 비석(碑石)이라는 뜻인데, 앞에 말한 고인돌 분포지역을 감안한다면 고구려 말로 '다물(多勿, 다무르다, 다시 물르다, 되찾는다)'을 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셈이다. 그리고 비석의 네 면에는 빽빽하게 한문(漢文)으로 글을 새겨 이 같은 사실(事實)과 대왕(大王)의 공덕(功德)을 기록하였는데, 고구려(高句麗)의 금석문(金石文)으로서는 이것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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