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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농민, 천민의 반봉건 운동과 최충헌 집권체제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5.04.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머리말
2. 무신정권기의 사회변동의 원인과 배경
3. 무신정권기에 발생한 민란
1) 망이·망소이 등 남적의 봉기
2) 김사미·효심 등의 봉기
3) 사노 만적의 항거
4. 사회변동의 의의와 결과
5. 최충헌 정권의 성립 배경
6. 최충헌 집권 이전의 행적
7. 최충헌 정권 성립
8. 최충헌 정권의 성격
9. 최충헌 정권의 한계
10. 맺음말

본문내용

12세기의 귀족사회는 귀족사이의 반란으로부터 붕괴되어 갔으며 무신란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해체되었다. 무신들의 집권이 영속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무신란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변화가 단순히 문무사이의 정권교체에 그치지 않았음을 주지할 수 있다. 이러한 귀족사회의 상층구조로부터의 붕괴는 자연히 신분질서를 무너트렸으므로 하층부인 농민·천민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 농민과 천민의 봉기는 양반관리들의 정치적 반란과는 달리 사회경제적인 모순에 의한 하층민들의 반항이었으므로 민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농민의 동요는 이미 무신란 이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런데 무신란 후의 집권무인들은 보다 과중한 수탈을 감행하여 농민생활이 더욱 곤궁하여졌으므로 농민들은 무신 상호간의 정권다툼으로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봉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고려 후기에 있어서 신분제의 동요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정치적인 변동이었다. 신분제 동요의 내용은 신분이동이 전에 비해 커졌다는 것인데, 신분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 가장 중시한 것은 신분을 고정시키는 일이 신분을 이동시키는 일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후기의 사회가 되어서도 신분고정은 여전히 강조되었지만, 신분이동이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 되어 갔다. 이러한 신분간의 활발한 이동 또한 민란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무신정권기에 전국적으로 발생한 농민·천민난등의 사회변동이 발생한 원인과 배경, 무신정권기에 발생한 민란의 전개과정 - 천민의 난에서는 망이·망소이의 난과 만적의 난, 농민의 난에서는 김사미·효심의 난을 중심으로-과 이러한 민란으로 인한 사회변동에 대한 결과와 그 의의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또한 12세기 후반에 설립되어 1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고려의 무신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에 있어서 분명히 특색 있는 정권이었다.

참고 자료

-參 考 文 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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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史編纂委員會《韓國史》20-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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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史》7-무신정권과 대몽항쟁,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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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란《최충헌정권의 성립과 그 성격》이대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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