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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대외관계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5.04.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대외관계에 대해서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제가 사학과 학생이라 그런지 A+주더군요.

목차

1.고려의 북진정책
2.거란과의 관계
3.여진과의 관계
4.송과의 관계
5.몽고와의 관계
6.일본과의 관계
7.맺음말

본문내용

1.고려의 북진정책

북진정책은 고구려 고토회복을 목표로 하는 대외정책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태조는 당
시 여진족들의 사냥터로 변한 평양을 순행하고 사촌동생 왕식렴을 그 지역 책임자로 삼아
훗날 북진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는 이후 중국대륙의 지각변동
에 의해 제대로 수행될 수는 없었습니다. 다 알다시피 고려시대 500년간(918-1392) 중국에는 오랑캐라 불리는 북방민족의 전성기였습니다. 즉 거란, 여진, 몽골 등의 북방민족이 요, 금, 원 등의 제국을 세우고 중원의 한족 송나라를 위협하였던 것이지요. 오랜 정통과 권위의 상징인 한족 송과의 외교를 통해 국가발전을 꾀하고자했던 고려의 외교노선은 이들 북방제국과 송과의 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고려는 이들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치적 관계가 송보다 더 직접적일 수밖에 없었다. 즉 이들 북방민족의 침입을 받았던 것이다. 전쟁의 결과 고려는 문화적으로 후진국인 이들에 사대의 예를 펴야하는 현실에 대해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 고려 조정은 명분론(파)과 실리론의 대립과 타협이 내재된 채 정국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거란침입시 할지론자와 주전론자의 대립, 대여진정책에 있어 예종과 윤관의 9성 구축과 이를 반대한 김인존 등의 보수세력의 대립, 그리고 인종대 금에 대한 사대정책을 둘러싼 묘청과 김부식으로 대별되는 북진파와 사대파의 대립 등을 들 수 있겠지요. 그동안 우리는 주로 주전론자, 구성구축파, 북진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 반대 입장을 역사를 망친 요인의 하나로보아 왔습니다만 요사이는 이러한 대립적 사고를 지양하고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실리를 구추한 정책이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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