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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쟁에서 보급물자가 승패를 좌우한 사례(2차 세계대전)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5.04.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6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2차대전에서 독일군을 영미 연합군이 철저하게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을 군수물자 보급지원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본 자료입니다. 독일군이 왜 패하게 되었고 영미연합군은 초기에 이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끌게 되었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목차

서유럽전역과 보급문제

1. 계획의 함정
2. 노르망디에서 센 강까지
3. '넓은 정면(broad front)'이냐 '예리한 돌파(knifelike thrust)'이냐?
4. 결 론

본문내용

여기서 파헤쳐보고자 하는 것은, 흔히들 막대한 공업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승리하였다는 영미연합군은 과연 어떤 보급노력을 기울이며 전쟁을 치뤘는가 하는 의문이다. 아무리 한 국가의 산업 생산력이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생산된 물자를 야전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후방에 무기와 탄약이 가득 쌓여있다고 한들, 정작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에 그러한 보급품이 적시에 추진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앞서도 종종 이야기를 했지만, 이러한 야전에서의 작전수행과 지원업무 사이의 관계에 있어 영미연합군과 독일군은 다소 상이한 접근방식을 가지고 군 조직을 발전시켜왔다. 예로부터 독일군은 효율적인 작전수행을 최우선시하여 전투근무지원업무가 여기에 종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반면에 영미연합군은 방대한 군 행정조직에 의한 철저한 지원의 바탕이 수립된 이후에 그에 맞춰 작전수행을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전참모장교가 독일군에서는 제 1 참모장교인데 반하여, 미군에서는 인사, 정보 다음인 제 3 참모장교(G-3)라는 사실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은 제 2 차 세계대전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앞서 바바롯사 작전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보급전을 다룬 글에서 살펴봤듯이, 독일군은 작전 요구사항에 보급문제를 무리하게 끼워 맞추고 낙관적인 예상만으로 일을 벌이다 패배하였다. 반면 이제 살펴보겠지만 영미연합군은 너무 철저한 준비를 강조하다보니 종종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에 사로잡혀 돌발적인 상황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 입안과 세세한 계획 수립에 무려 2년이라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음에도 정작 실제 전투는 그런 계획과는 완전히 틀어져 영 예상을 빗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보통 영미연합군은 승자의 영광된 모습으로서만 기억되고 있기 때문에 막후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들에 대해 세간의 인식이 부족한데, 이하에서 다룰 그 이면의 혼란상은 제 2 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항상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철저한 계획과 조속한 실행에 각각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적절한 선택을 하느냐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선택에서 전쟁 수행에 있어 전자에 중점을 둔 영미연합군과 후자에 중점을 둔 독일군의 사례를 곱씹어 봄으로서, 그 사이에 적절한 접점을 찾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로 인한 장단점과 종국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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