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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통일 신라의 민족 융합 정책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5.04.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서론

·본론
1.삼한 일통이란?
2.통일신라의 민족융합 정책
3.민족융합 정책 중 9주 5소경
4.신라의 민족융합 정책의 의의

·결론

본문내용

본론

: 삼국통일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넘어뜨렸지만 그것이 곧 삼국 통일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당이 백제·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의 영토로 삼을 뿐 아니라, 나아가 신라마저도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신라는 이제 삼국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다시금 이 땅 안에서 당군을 몰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아야 했다.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그 지역에 각각 웅진 도독부와 안동 도호부를 설치하여 그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신라마저도 그 지배하에 넣으려 하여 신라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 신라의 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임명하였다. 한편 신라의 장군들을 회유하여 신라 지배 세력을 분열시키려 하는 등 야심을 드러내었다. 지금까지 삼국 통일을 위해 싸워 온 신라로서는 이러한 당의 태도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직후부터 이 땅에서 당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쟁을 공공연히 전개하였다. 우선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숨의 무리를 받아들여 그들을 대당 항쟁에 이용하는 한편, 백제 옛 땅의 회복에 착수하였다. 문무왕 10년, 신라는 품일을 보내 당나라 군대가 머무르고 있는 백제의 여러 성을 쳐서 빼앗았다. 이듬해에는 사비성을 함락시켜 소부리주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백제 옛 땅은 모두 신라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당군의 침략은 격화되었다. 당은 고구려와 백제의 양 지역에 남아 있던 군사로 하여금 신라군을 막게 하는 한편, 거란병과 말갈병을 동원하여 북방으로부터 신라를 공격하였다. 신라는 마전·적성 등지에서 당·말갈·거란의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매소성(지금의 연천) 일대에서 당과 말갈의 연합군 20만 대군을 섬멸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백제 지역에 침입하려는 당의 수군을 금강 하류 기벌포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이리하여 당군은 더 이상 이 땅에 버틸 수가 없어 안동 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옮기고 한반도로부터 물러가게 되었다(676년). 이로써 신라는 한반도 안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자주적인 삼국 통일의 위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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