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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박지원과 실학파의 문학

저작시기 2004.03 |등록일 2005.03.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朴趾源
1. 朴趾源
1) 生涯
2) 文學
3) 思想

Ⅱ. 李德懋·柳得恭·朴齊家·李書九
1. 李德懋
1) 生涯
2) 文學과 思想
2. 柳得恭
1) 生涯
2) 文學과 思想
3. 朴齊家
1) 生涯
2) 文學과 思想
4. 李書九
1) 生涯
2) 文學과 思想

본문내용

Ⅰ. 朴趾源

1. 朴趾源

1) 生涯
朴趾源(1737~1805)은 潘南人으로 자는 仲美 또는 美仲, 호는 燕巖 또는 煙湘·洌上外史, 시호는 文度이다. 錦陽尉 瀰(미)의 5대 손자이자, 知敦寧府事 弼均의 손자로서 이른바 名閥의 후예로 서울 西門第에서 태어났으나, 父公 師愈를 어려서 여의고 祖父의 護養으로 자랐다. 16세에 妻叔에게 『史記』 <信陵君傳>을 배우고 논설 數百言을 지어 그를 놀라게 하면서부터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하였다. 3년여를 杜門하고 발분 力學하여 百家諸書를 周覽博通하였으며, 경제·정치·군사·문학 등을 위시하여 천문·지리 등에까지 두루 궁구하였다. 그러나 仕宦에는 뜻이 없어 應擧하지 않음으로써 가세는 어려웠다. 白塔 북쪽에 살면서 그의 문장과 氣宇를 景仰하여 그 주변에 모여 살던 柳得恭·李德懋·李書九 그리고 여기를 무상 방문여 종유했던 朴齊家 등과 함께 이른바 白塔淸緣을 맺으며 실학파 문단을 형성하였고, 洪大容과 泰西地球論을 토론하면서 지동설을 언급하였다. 정조 4년 三從兄 明源을 따라 布衣의 신분으로 청에 들어가 그곳 문물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견문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그곳 문사들과 교유하며 특히 熱河 太學에서 鵠汀 王民皥 같은 학자와 필담을 주고 받으면서 <鵠汀筆談> 그리고 <亡羊錄>, <傾蓋錄>, <黃敎問答> 등의 奇詭한 글들을 남겼다. 이 여행에서 이루어진 『熱河日記』는 그 奇詭함이 그의 文弟子 南公轍의 글과 함께 정조에게 忌諱되어 醇正文을 지어 自贖하라는 엄명과 함께 문체파동까지 몰고 왔으며, 이 글에 대하여는 그 자신도 처세 곤궁으로부터의 불평을 풀기 위하여 마구 戱作한 것이지 좋아서 지은 것은 아니라고 放孫 南壽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顔貌가 魁然하고 意氣가 軒豁磊落해서 무엇이나 글로 썼으며 술이 얼큰해지면 要路의 고관 귀인이나 欺世僞學의 무리들을 거침없이 譏刺했다.

참고 자료

․ 《한국문학통사3》, 조동일, 지식산업사, 2003年
․ 《漢文學史》, 李丙疇 外 共著, 새문사,
․ 《朝鮮漢文學史》, 김태준(최영성 교주), 심산, 2003年
․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김지용, 한양대학교 출판부, 200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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