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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49 신령한 지혜로 자라거라

저작시기 2005.02 |등록일 2005.02.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것은 사랑의 교회의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타이핑한 글입니다. 49번 신령한 지혜로 자라거라.

본문내용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령한 지혜로 자라가라고 붙인 이유는 오늘 이 말씀을 받든 골로세 교회는 초신자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사람들 또 로마제국의 다신교를 믿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와 새로운 신자들 초신자들이 많았습니다. 초신자들에 관해서 골로세 교회를 섬겼던 그 바울의 동력자였고 그 골로세 교회의 사역을 보고있던 에바부로라는 에바부로라는 이분이 이제 어떤 보고를 하느냐면 그중에 하나가 지난 주일에 제가 말씀드린 참 하늘에서 한 소망에 관해서 사랑과 감사 믿음이거 애기했습니다마는 뒤에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폴스트 티칭 잘못된 가르침 들을 심각한 이단의 공격들 이런것들이 초신자들을 어렵게하는 해서 초신자들이 제대로 주님 앞에서 잘 성장하고 자란것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오늘 바울이 간절한 기도의 소원을 가지고 이렇게 모아 놓은 것이 본문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의 교단적이고도 한국 기독교 전체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무슨말인고 하니 지난 십여년이 넘도록 한국 교회의 기독교는 정체를 면하지 못하고 잇습니다. 저희가 속한 장로교 교단만 하더라도 지난 5년간에 어떤 그 숫자를 가지고 제가 꼭 말씀드린 것은 아니지만 5년 동안 하나도 발전을 하지 못하고 정체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하고 이렇게 관심들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았더니 한 달 전에 국민일보에서 이와 같은 통계가 나왔어요. 왜 기독교가 발전하지 못하나 왜 기독교가 오늘날 정체하고 있는가? 이유가 먼가 핵심은 이것입니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하고 삶이 따라가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뭘 말합니까. 신앙과 삶의 불일치라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고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안에 오랬동안 신앙생활을 한분들 가운데 자라지를 못하는 거예요. 소위 신앙과 삶이 이렇게 같이 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제가 얼마전에 이렇게 아주 배꼽을 잡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드릴까요? 머냐며는 예수 믿기 전에 화투를 잘 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소위 고스돕계의 거성. 화투를 잘 치는 이분이 예수를 믿었는데 화투를 쳐야되나 말아야 되나 깨림직하고 이렇게 했어요. 근데 이분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어떤 생각을 했냐며는 저는 화투에 익숙하지가 않아요. 왜냐면 제가 목회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때 우리집에 화투 금지 그래서 고스돕의 고자도 몰라요. 그래도 먼가 예수 믿고 변화되었으니까 고스돕을 쳐도 먼가 달라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가지고 고스돕을 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치는 거야. 그다음에 더 걸작은 고스돕을 다 치고 난 다음이 고스돕을 같이 친 친구들 있지 않습니까? 다같이 모아서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거야. 이야 내가 그 애길 들으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이게 하튼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도 삶의 변화가 없는 거야. 신앙과 삶이 따라가지를 못하는 거야. 이유가 머냐하면<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이것은 사랑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타이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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