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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총론]토지제도로 살펴본 중국의 역사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5.02.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토지제도의 변천을 통해 중국사를 바라본 리포트 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본문.
1. 서주에서 전국시대까지 - '토지국유제' 시기

① 서주시대 : 토지국유제의 형성과 정전제
② 춘추시대 : 토지국유제의 파괴와 토지 매매관계의 발생
③ 전국시대 : 토지국유제의 와해와 토지사유제의 발생

2. 진한에서 명청에 이르기까지 - ‘토지사유제’ 시기

① 진한시대 : 토지사유제의 확립과 발전
② 위진남북조시대 : 토지에 대한 국가지배권의 강화
③ 송원명청시대 : 토지사유제의 발전

맺음말.

본문내용

2. 진한에서 명청에 이르기까지 - ‘토지사유제’ 시기

진대에서 아편전쟁 직전까지의 약 2000년간은 봉건 토지사유제의 기간으로 보며 이 제도는 줄곧 발전적이었지만 그 사이의 상황은 복잡하고 반복되기도 했다. 서술의 편의상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진한시대 : 토지사유제의 확립과 발전
진대는 토지사유제가 확립된 시기이며 한대는 토지사유제가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다. 그럼 무엇을 기준으로 토지사유제가 확립된 시기를 판단할 것인가? 바로 법률로 표준을 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전국시대는 군웅이 할거하여 혼전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당시의 법률 중에 토지사유권을 승인한 것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진
의 상앙변법은 토지사유권을 승인한 것이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5년이 지난 후 “백성은 스스로 관부에 가서 토지를 등기하라”라고 명령을 내려 토지사유제가 전국적 범위에서 법률적 승인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는 토지사유제가 전국적인 범위로 확립된 지표인 것이다. 그렇지만 진은 단지 15년간 존재하다가 멸망했다. 따라서 토지사유제의 발전은 주로 양한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내용을 아래의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 토지제도에 대한 관념의 변화
양한시대 사람들의 토지제도에 대한 관념은 서주 ․ 춘추시기와는 크게 달랐다. 토지국유제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구제도로 여기고, 토지사유제는 현행의 신제도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토지제도의 변화는 토지매매의 성행을 초래했다. 그래서 개인의 사유재산과 토지를 팔수 있었으며 관부에서 지급한 토지도 팔 수 있었다. 예컨대 서한 때의 공우는 “빈민들은 비록 전을 하사받아도 오히려 싼값에 팔고 장사를 했다.”고 말했으며, 서한 말에 왕망이 토지겸병을 억제하기 위해 ‘개제’하면서 “현재 천하의 전은 왕전으로, 노비는 사속으로 이름을 고치고 모두 매매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또한 왕망타도의 격문엔 “전을 왕전으로 하여 매매하지 못하게 하고 산택을 법규로 규제하여 백성의 본업을 빼앗은 것은 역지의 대죄다.”라고 나타나 있다. 이런 사실들로서 토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 이미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다름 아닌 토지제도 자체가 이미 변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1. 김택민, 『中國土地經濟史硏究』,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2. 박원효, 『中國의 歷史와 文化』,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2.

3. 신채식, 『東洋史槪論』, 삼영사, 1996.

4. 이춘식, 『中國古代史의 發展』, 신서원, 1992.

5. 조강, 『中國土地制度史』, 대광문화사, 1985.

6. 허세욱, 『中國文化槪說』, 금성교과서,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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