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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계열]고대사회의 토지제도

저작시기 2005.01 |등록일 2005.02.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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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국유론과 사유론

2.삼국의 토지제도
1)고구려
2)백제
3)신라

본문내용

초기의 연구자들은 근대 이전의 우리 나라의 모든 토지의 소유권은 궁극적으로 국가에 귀속된 것으로 보았다. 1920년 일본인 와타 이치로에 의해 제기된 토지 국유제는 1960년대까지 정설화되어 계승되었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삼국 이전의 토지제도는 族制조직을 기초로하는 공유제였다. 그러나 삼국이 성립된 후 점차로 족장에 의한 권력집중과 족제의 파괴로 말미암아 토지는 부족 공유제로부터 점차 개인재산으로 바뀌게 되는데 신라통일기부터 당의 문화제도를 수입하여 공전제를 확립하였다. 이처람 원시 이래의 토지공유제를 국가적 규모로 확대하여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고 관료와 공신에게는 수조권을 그리고 일반백성에게는 경작권을 나누어준 데 불과하여 토지 자체를 지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사유지가 존재했더라도 이는 불법적이고 예외적인 것이었으며 모든 토지가 왕의 토지라는 이른바 왕토사상 왕토사상 : 삼국 시대에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귀족 정치가 성립됨에 따라 모든 토지와 국민이 국왕에 예속되는 것으로 모든 국토는 왕의 토지이며 모든 국민은 왕의 신하라는 전제적인 사상
도 현실적인 토지소유관계가 관념에 반영된 결과로 이해하였다. 와타의 이러한 주장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농민으로부터의 토지수탈을 합법화하기 위한 목적에 이용되었다.토지국유론은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연국가 더욱 발달하였는데 백남운은 식민지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토지국유제를 이론화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백남운은 삼국을 고전 고대적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고 삼국은 정복국가의 형성과정에서 획득한 토지를 국가의 고유재산으로 삼았다고 보았다.

참고 자료

<한국사4-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 한길사 강만길 외
<한국사 신라촌락과 농민생활> 김철준
<한국사입문> 지식산업사 한국사 연구회
<한국사강좌> 지식산업사 양영환
<한국고대국가형성> 민음사
<한국고대국가형성론> 서울대 출판사 최몽룡, 최성락
<한국고대사지성사산책> 백산서당 박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삼국사기> 백제본기
<한국사5-삼국의 정치와 사회-고구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6-삼국의 정치와 사회-백제> 국사편찬위원회
<삼국유사에 나타난 소유권사례에 대한 고찰> 법사학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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