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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지리]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5.02.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레포트 표지까지 만들어놨어요..
이쁘게 사용하세용*^^*

목차

<남산 밖 길 찾기, 남산 속 길 찾기>
<건축과 기억 그리고 우리의 장소>
<도시의 음영을 품고 흐르는 맑은 개천 청계천>
<대학로! 너와나 그리고 우리의 추억>
<북촌의 집들을 찾아서>
<사장되는 종로, 살아있는 종로>
<회현동, 화교와 낡은 일식 가옥>
<잊혀진 인큐베이터, 해방촌>
<구 용산과 철도>
<한강은 움직인다>
<천이의 공간, 구로>
<전면 공간과 후면 공간의 교묘한 공존, 신도림역과 그 주변>
<난곡, 그 따스하고 아픈 이름>
<압구정동, 청당동, 고급아파트에서 디즈니랜드로..>
<제3의 주거공간 옥탑방과 지하방>
<서울이 만든 이중도시, 성남>

본문내용

<남산 밖 길 찾기, 남산 속 길 찾기>
애국가 속의 남산위에 저 소나무..“남산” 서울에 살지 않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산이다. 서울을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남산에 가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 남산, 특히 서울타워는 서울 땅을 밟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남산은 개화기 때부터 일제식민지 때까지 식민지화를 겪었다. 서울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서울 공략 전술을 짜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청일전쟁 후 남산의 북쪽 기슭 일대에는 일본인의 거주가 허용되었고 일본인들을 경성신사를 세웠다. 또한 일본 공사관, 한국 통감부, 조선 총독부 급기야 조선 신궁이 들어서면서 남산은 일본의 식민지를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물이 되었다. 남산에는 국립 중앙도서관, 수도 방위 사령부, 힐튼호텔 등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1993년에 시작된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 이후 일부가 강남으로 이전했다. 이제 남산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절마다 새로워지는 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건축과 기억 그리고 우리의 장소>
2001년 초 서울시는 근대 이전에 국한시키지 않고 근대 건축물인 승동 교회, 경공장, 공간 사옥 등 7곳을 지방문화재로 선정하였다. 건축을 하나로 전체 공간을 말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도시사가였던 루이스 멈포드는 도시의 역사를 밝히
기 위해 건축물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건축의 역사를 보면 건축물이 그 시대를 살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맑시스트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파리의 성심 성당을 사례로 건축물이 특정 계급의 이
해를 표상할 뿐 아니라 특정 계급에 의한 공간 지배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역사를 인식하는 살아있는 자만이 그 곳에 매장되어 있는 신비를 들춰낼 수 있다고 하였다. 민주화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던 명동 성당. 그 곳은 조선이 외세에 극복하여 천주교 포교를 인정하게 된 후 세워진 건물이다. 결국 명동 성당은 왕실과 조정의 권위를 한꺼번에 훼손하면서 서울 도성 한가운데에 설립되었다. 서울의 근대 건축 경교장과 이화장. 경교장과 이화장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쓰던 이화장은 그의 자손이 소유하는 개인재산이지만 초대 내각이 만들어진 역사유적지로 보존의지가 확고하나 경고장은 현재 강북삼성병의 소유로 껍데기만 유지하고 내부는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화장처럼 경교장도 개인의 욕심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과 공유를 위해 보존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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