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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검도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05.02 |등록일 2005.02.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검도에 관한 거의 모든부분을 다루었다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다루었는데 상당히 신경써서 만든 레포트입니다.

목차

검도 역사
검도 장비
검도의 용어
검도의 예

본문내용

검도 역사
검도란 `두 사람의 경기자가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사용하여 서로 정해진 격자 부위를 칼의 이법(理法)에 따라 유호하게 떄리거나 씰러 승패를 가리는 경기`이다.
검도는 칼, 혹은 검술(劍術)의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우리나라 검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때에는 조의선인(早衣仙人)이
검술이나 여타 무술을 익혔고, 백제에서도 도부(刀部)를 두어 칼을 제작하였으며 병법자(兵法者=검술 사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검술이 크게발전한 것은 신라에서였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꽃을 피움으로써
우리나라는 검술의 개화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보(劍法譜)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이다. 본국검법은 현대 검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쌍수집병검법(雙手執柄劍法)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신라에서 크게 일어난 검술은 고려 시대까지 영향을 미쳐 발전해 내려오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숭문천무 사상이 팽배해지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로부터 검술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그 동안 이를 계승, 발전시켜 오히려 검의 문화를 꽃 피우게 되었다.
조선조 중기까지 천대를 받아오던 검술은 임지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 중 본국검이 포함되어
군사훈련 과목으로 체택되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뒤 고종 때인 1896년 경무청에서 치안의 필요성에 의해 경찰 교육의 한 과목으로
격검(擊劍=검술)이 채택되었고, 1904년 육군연성학교에서도 교과목에 격검을 포함시켰다.
1908년에는 한국과 일본 간 최초로 경찰관 격검대회가 열렸다. 한일 간에 검술이 교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같은해 9월, 무도기계체육부(武徒機械體育部)라는 단체가 생겨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최초의 사회체육을 시도하였는데, 여기에도 격검이 한 종목으로 들어 있었다.
이때는 이미 격검의 장비 및 연무 방식이 현대 검도와유사하게 개발되어 있었다.
1910년경 격검이라는 용어는 `검도(劍道)`라는 새로운 용어로 바뀌었다. 전토용에서
무도(武道)성격이 강한 스포츠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검도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906년에는 사립 오성학교 등에서 검도를 가르쳤고, 1920년 조선체육회가 발족된후
192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설검도관이 생겨났으니, 강낙원 선생이 창립한
조선무도관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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