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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서울의 역사와 문화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5.02.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들어서며

Ⅱ. 서울의 도시형성사
1. 수도이전의 서울
2. 한양천도
3. 조선후기와 개항기
4. 전재복구와 수도로서의 면모 확립
5. 현대적 도시의 건설과 국제도시로의 부상

Ⅲ. 지역과 문화를 통해 본 “서울”
1. 광화문거리
2. 청계천
3. 몽촌토성
4. 여의도

Ⅳ. 서울의 미래상
1. 문화의 도시 “서울”
2. 새로운 “서울”을 위하여

Ⅴ. 맺으며

본문내용

태조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새 도읍의 건설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역성혁명을 한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긴다는 당위성 아래 흩어진 민심을 일신시키자는 계기로서, 구왕조와의 보이지 않는 끈을 끊어버리기 위한 의도로서 천도의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조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1392년 태조가 한양천도를 명한 이후 새 왕조를 위한 새로운 도읍지가 실질적으로 확정되기까지는 13년에 걸친 논쟁을 거쳐야 하였다.천도의 후보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풍수지리였다. 계룡산이 후보지로 대두된 것도, 무악이 거론된 것도, 그리고 개성을 고수하자는 의견도 표면적으로는 모두 풍수지리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풍수지리라고 하는 것은 한 지역을 놓고서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었다. 태조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정종대에 수도가 개성으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으나, 결국 1405년 10월 태종에 의해서 한양으로의 전격적인 천도가 이루어졌다. 태종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3개의 후보지인 한양, 무악, 개성을 두고 최종 결심하여 결국 한양이 수도로서 결정된 것이다. 당시 한양천도론자들이 주장한 한양의 수도로서의 적격성은, 첫째 풍수지리사적으로 송악(개성) 다음가는 훌륭한 자리이고, 둘째 수운이 편리하여 물자수송에 유리하고, 셋째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하면 방어상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중앙집권체제에 편리한 여건을 갖춘 점이었다.또 위와 같은 현실적인 지정학적 여건도 중요하나 서울이 갖고 있는 수도로서의 민족사적 당위성도 중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서울은 삼국문화의 교차지로서 고조선으로부터 흩어졌던 민족의 문화를 다시 통합하여 통합된 민족국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문화사적 중심성과 개방성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국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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