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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소크라테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5.01.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소크라테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잘 기술하였고 뒤에 각각에 대한 소감이 정리되어있다.

목차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

본문내용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전반생은 확실하지 않다. 그는 아테네에서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각가가 되었으나,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철학책을 읽기도 하고, 소피스트(아테네의 궤변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진리 탐구에 몰두했다. 소크라테스가 태어났을 무렵의 아테네는 페르시아 군을 무찌르고 변방을 복속시켜 강대한 도시 국가로 군림하던 시기였다. 그 후 훌륭한 정치가 페리클레스들의 힘으로 스파르타와 화평을 맺고, 강력한 해양 제국이 되었으며, 국내는 매우 민주화되어 있었다. 그 무렵, 소크라테스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 세월이 흘러 소크라테스가 40세쯤 되었을 무렵, 아테네는 또다시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게 되어, 이른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년)을 계기로 해서 마치 추풍 낙엽처럼 국력이 쇠퇴해갔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위해 몇 차례나 싸움터에 나가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웠다. 자기의 고향인 아테네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지자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무너지고, 스파르타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차차 반민주적이 기운이 강해졌다. 그 때 까지 민주적인 입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가하면, 국외로 추방되기도 했다.
이윽고 아테네는 민주 정치를 다시 회복했지만, 그는 새로 실시할게 된 민주정치에는 별로 호감을 느끼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 무렵의 민주 정치는 노예를 가진, 권력과 돈이 많은 시민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배 계급을 위한 민주정치였다.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생활 태도와 정의 에 관한 설도 다만 어떻게 하면 입신출세를 할 수 있나 하는 편의주의로 끝나 있어서, 인생의 진실을 탐구라는 열의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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