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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 청련 이후백의 시조분석

저작시기 2003.01 |등록일 2005.01.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 청련 이후백에 대하여
2. 소상팔경에 대하여
3. 소상팔경 및 그외 시조 원문 및 분석
4. 소상팔경도

본문내용

본관 연안(延安). 자 계진(季眞). 호 청련(靑蓮). 시호 문청(文淸). 16세 때 향시(鄕試)에 장원, 1546년(명종 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5년 식년문과에 급제, 1558년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가 되었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67년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1569년(선조 2)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도승지·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1573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간·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인성왕후(仁聖王后)의 복상문제(服喪問題)가 일어나자 만 2년상을 주장, 실행하게 했으며 1578년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청백리에 녹선,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 연양군(延陽君)에 추봉(追封), 함안(咸安) 문회서원(文會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청련집(靑蓮集)》이 있다.
그는 9살 때 부모를 여의고 백부 밑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청백리로 소문이 났는데 이에 그에 대한 일화의 일부를 소개하여 대략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후백이 함양(개평동)에 살다가 9세 되던 해에 괴질이 유행하여 부모가 한꺼번에 죽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16세까지 이웃 고을 거창에 있는 백부(伯父: 李國權, 縣監) 밑에 의탁하였는데 어찌나 총명한지 먼 고을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이후백의 이름을 '後白(후백)'이라 지은 것은 개령현감(開寧현감: 현 김천시 계령면 일대)을 지낸 조부 이원례(李元禮)가 '커서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 이백을 닮아서 시문을 잘하라'는 소망을 담아 '뒤에 태어난 이백'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당시 진주목사(慶任)를 중심으로 조정과 영남일원의 문객 31인이 '金蘭契(금난계)'라는 문계(文契)를 조직하고 정기적으로 진주 촉석루(矗石樓)에 모여 시문을 지으며 교유하였는데, 이원례(李元禮)는 그 금난계 계원의 한사람으로서 크게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문을 좋아하고, 거창의 고택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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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rtsquare.co.kr/curator/sketch05.htm -- 소상팔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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