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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창경궁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4.08 |등록일 2005.01.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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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홍화문
2. 옥천교
3. 명정전
4. 문정전
5. 숭문당
6. 함인정
7. 경춘전
8. 환경전
9. 통명전
10. 양화당
11. 춘당지

본문내용

창경궁은 성종 연간에 처음 지어졌다. 1482년(성종13) 12월 창덕궁 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종은 수강궁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수강궁은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처소로 마련하였던 궁이었다. 그 궁을 확장하여 성종 당시의 세 대비의 처소를 삼으려는 뜻이었다. 수강궁을 확장하는 공사는 그 이듬해 봄부터 시작되어 1년반이지난 1484년(성종15) 9월에 일차 완공을 보았다. 그때 주요 건물의이름을 지었고, 또 홍문과 응교였던 김종직이 창경궁상량문을 지어 바쳤다는 기사로 보아 이때 이미 ꡐ창경궁ꡑ이라는 새 이름도 지어졌다. 1484년부터 다시 보완하는 공사를 한뒤 1485년(성종16) 5월에 소혜왕후와 안순왕후가 이어하였다. 그 당시 창경궁은 독립적인 궁궐로서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왕이 일정기간을 기거하며 정사를 처리하는 궁궐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으면서 창덕궁의 부적한 기능, 곧 창덕궁에 미처 다 수용할 수 없는 왕실 가족과 그에 딸린인원을 수용하는 기능을 보완하는 궁궐이었다. 창경궁도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창경궁의 중건은 1615년(광해군7)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바로 시작되었다.
광해군은 창덕궁으로 이어하자마자 창경궁의 주요 전각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더 나아가 외전 주요 건물 뿐아니라 각 이문을 속히 수리하여 그 해 안으로 공사를 마치도록 독촉하였다. 이러한 광해군의 적극적인 추진에 힘입어 창경궁의 중건 공사는 약 1년만에 완료된듯 하다. 광해군대 자시 모양을 갖추었던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인조반정 직후 이괄의 난으로 상당히 망가졌다. 그때부터 인조는 광해군대에 지었던 경덕궁에서 9년을 살았는데 그 기간 다시 정묘호란을 만나 강화도로 피난을 가는등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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