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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 노문학, 고골 ] 고골 - 검찰관(조까라마이싱)

저작시기 2004.09 |등록일 2005.01.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골의 검찰관이란 작품을 리쌍의 조까라마이싱
이란 노래와 함께 비교분석한 레포트입니다.
발표시 노래 틀어주면서 했는데, 교수님이 극찬을
하셨던 자료입니다.
좋은 참고자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1. 작 가 소 개

2. 작가의 작품세계

3. 작가의 집필의도

4. 작품의 줄거리

5. 작품속 인물분석

6. 작품을 마치며...(내가 생각한 “검찰관”이라는 희극)

7. Bonus Track
.

본문내용

니꼴라이 고골은 우크라아나 소로친쯔이에서 그다지 지체 높지 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골은 문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은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할아버지는 지방의 각종 전설과 일화에 능통했고, 아버지는 가정공연을 위한 희곡 대본을 직접 써서 배우와 연출까지 겸하는 등 연극적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몽상적 성격의 여인으로 광신적 신앙심의 소유자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예술적이며 종교적 영향을 강력하게 미쳤다. 그는 끼예프 북부 네진 시의 김나지움에서 계몽사상과 제까브리스뜨 사상 등 진보적 교육을 받았다. 기숙학교인 이곳에서 그는 연극홀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828년 학교를 졸업한 그는 청운의 뜻을 품고 수도 뻬쩨르부르그로 상경했다. 그러나 수도에서 시인으로 데뷔하려던 꿈은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자비 출판한 첫 시집“간스 뀨헬가르쩬”의 참혹한 실패로 산산이 깨어졌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는 자기 시집을 사모아 태워버리고, 러시아를 완전히 떠날 생각으로 유럽행 배에 올랐다가 독일의 뤼백에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다시 귀향하여 1831년까지 내무부 하급관리 및 연극배우 등 여러 직종에 종사하게 된다. 1831년 5월 그는 뿌쉬낀과 알게 되는데, 그는 이후 고골의 문학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방의 이야기를 엮은 “지깐까 부근 농가에서의 밤”을 내놓게 된 것도 뿌쉬낀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이 첫 작품집은 독서계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고골은 일약 촉망받는 신인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한편 그는 주꼽스끼의 권유로 여학교의 역사 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1834년 빼쩨르부르그 대학 역사학부의 조교수직을 맡아 중세사 강의를 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러시아 희곡 1(폰비진 외) - 도서출판 열린책들
러시아 문학의 이해(한국 슬라브학회 편) - 민음사
인물로 읽는 러시아문학(정명자) - 도서출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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