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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성육신의 신앙『김재준 평전』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5.01.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성육신 신앙의 김재준 목사님의 독서 감상문입니다.
좋은 성적 거두세요... ^^

목차

1. 함경북도 경흥, 산골 마을에서 태어남(1910-1920)

2. 서울, 일본, 미국, 유학 길에 오르다(1920-1932)

3. 조선신학교를 세우기까지(1933-1939)

4. 일제식민통치 해방 전후(1940-1950)

5. 장로교 분열(1950-1960)

6. 성육신의 신앙(1960-1973)

7. 케나다, 미국에서의 조국을 위한 증언(1974-1983)

8. 별세하시기까지(1984-1987)

본문내용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는 조선 왕조가 이미 기울어 일본의 조선 합방이라는 식민 지배 야이 차근차근 진행되던 1910년 9월 26일, 함경북도 경흥군 상하면 오봉동 일명 ‘창골’ 마을이라고 부르는 두만 강가 산골 마을에서 김호병 씨와 채성녀 씨를 부모로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다. 김재준의 품격 형성 요소 중 특히 정신적인 삶의 기초에는 유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다. 김재준이 다섯 살 때부터 받았던 최초의 교육은 바로 아버님의 훈장으로 모신 서당 교육이었으며, [천자문],[동몽선습]을 떼고 일고여덟 살 때부터는[대학],[중용],[논어],[맹자] 등 사서를 읽었는데, [맹자]를 아홉 살 때 통독하고 부모님 앞에서 당판으로 일곱 권씩 되어 있는 [논어]와 [맹자]를 첫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 암송하였다. 나이 열 살 이전에 동양 고전 사서를 눈감고 암송했다고 해서 그 깊은 뜻을 다 헤아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김재준이 열살 전에 통독한 동양의 고전과 한문 실력은 그의 전생애동안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김재준은 18세 어린 나이로 장분여와 결혼하여 험한 인생 여정 80여 세를 함께 해로하고 인생의 험한 여정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는데,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 없이 김재준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를 되물어 본다. 김재준은 장분여와 80여생을 함께 해로하면서 3남 3녀의 자녀를 얻었다.청년 김재준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기가 있었다. 그는 평생 신앙의 형제 같은 관계요 신학적 동지요 학형이자 인도자인 만우 송창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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