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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일명 깡통 교회 이야기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5.01.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깡통교회 이야기 책의 독서 감상문입니다.

목차

Ⅰ. 안디옥 교회와 나의 목회
①무자격 목회자
②선교 낙수
③선교 바자회와 찐빵
④선교와 목사와 교회

Ⅱ. 한국 교회 부흥, 절대로 중단될 수 없다

Ⅲ. 개미들이 쌓는 탑
①선교사 바울의 선교 전략

Ⅳ. 천국은 가득 차고 지옥은 텅텅 비어라
①라헬을 연애하는 까닭에
②괘씸한 놈
③예수살이
④아시아를 찾으시는 하나님
⑤수도사적인 선교사
⑥천국은 가득 차고 지옥은 텅텅 비어라

Ⅴ. 불편하게 삽시다(바울선교회 캠페인)
①술, 담배에서 해방받읍시다
②여아를 살려라
③닫힌 교회당 문을 열어라
④미신을 추방하자
⑤식민주의적 선교를 중단하라
⑥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죄
⑦불편하게 삽시다

Ⅵ. 느낀 점

본문내용

나(이동휘 목사님)의 목회는 1961년 농촌 목회로 시작되었다. 고향인 구정리 교회에서 전도사로 첫 출발을 했다. 결혼을 안 한 상태였고 노부모님만 계시는데다 목회자가 비어있었고, 게다가 농촌 운동을 하려면 고향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2년 반 동안 고향 교회를 섬겼다. 이 기간의 목회는 ‘우리 어머니의 목회’라고 보아야 한다. 내가 설교때마다 기도로 밀어대셨고 새벽시간에 깨워 주셨으며 용기도 주셨다. 어머니는 주의 종에게는 천사처럼 대접을 하셨다. 순례 전도자들이 많은 때에 반드시 우리 집은 거쳐야 할 거접이었고 수많은 주의 종들이 들러가곤 했다. 그때는 반드시 닭을 잡으셨으며 최고의 식탁이 준비되었다. 정결한 솜으로 옷도 해드리고 머슴을 시켜 아무도 몰래 쌀 한 가마씩 지워 가난한 목회자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일제 시대 때 보리죽도 먹기 어려웠지만, 주일 점심은 주일학교 선생들과 먼 곳에서 온 교인들을 데려다 먹였다. 또한 친척전도에 전력을 기울이셔서 수십명의 성직자가 배출되었다. 세 남매를 모두 신학교에 보내셨고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셔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를 격려하신다. 결혼한 지 일년 반쯤 되었을 때 산으로 올라가 3개월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다. 이시기에 별것 없었지만 어머니의 순수 신학을 발견하는 시기였다.
기도원에 있다가 옥구군 이곡교회에 청빙을 받았다. 이교회에서는 5년 8개월 동안 봉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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