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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세로의 시간여행] 중국 중세로의 시간여행

저작시기 2004.02 |등록일 2005.01.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들어가며

2. ‘수양제 이발관’과 ‘수양제 스낵’

3. 文明太后의 치마폭과 孝文帝의 洛陽 遷都

4. 長江이 젖먹여 키운 江南의 보석 ‘南京’

5. 竹林은 사라지고 七賢의 이름만 남아…

6. 맺으며

본문내용

권력의 정상에 있었던 황제도 그 자리에서 쫓겨나면 일개 村老보다 나을 것이 없는 법이다. 이것은 망국 황제 수 양제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또한 長江과 대운하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四通八達의 교통중심지로서 오랫동안 번성했던 양주는 인구28만의 한적한 도시로, 이제 중국 육상교통의 대종을 이루는 기찻길마저 비켜가고 있다. 이런 초라한 도시에 실제 양제의 묘라고는 믿기지 않는 묘가 잡목에 둘러싸여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잊혀진 채 양제의 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양주에서 한 도시의 영광과 쇠락의 자취를 보았고, 한 권력자의 영욕의 흔적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간이란 누구나 현세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영광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끼니마저 거르는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 권력의 정상에서 천길 구렁텅이로 추락한 양제의 드라마틱한 서글픈 인생에 대해 필자는 진한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이 서글픔을 더하는 것은 양제의 묘를 지키는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발관과 스낵 가게뿐이었고, 양주 동쪽 고운하에는 거대한 용선에서 흘러나오던 奏樂 대신 삶의 대부분을 작은 배 한 척에 기대고 사는 민초들의 한숨소리였다. 필자는 여기서 화려했던 양주의 자취와 수 양제의 드라마틱하고도 서글픈 영광과 좌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양주는 장강에 연해 있고 바다에 가까이 있어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라는 지리적인 조건과 물자 생산이 풍부한 경제적 조건 때문에 일찍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많이 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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