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한국근현대사] 한국근현대사민중의삶(80년대농촌의문제점과농민운동)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5.01.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근현대사에서 80년대는 혼란과 민중의 도약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농촌은 정부의 무능력과 핍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목차

흔들리는 농촌(1980년대)
80년대농촌의문제점
농민운동
농촌을 살려야 한다.

본문내용

80년대의 농촌의 삶은 정부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정부의 탁상 공론 그리고 농산물 개방에 어설프게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 농민들의 빚을 가중시키는 정부의 정책 등으로 농민들은 재정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에 따른 1980년대의 농촌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피폐”일 것이다. 농촌을 피폐하게 문제점을 알아보자.
▲토지문제 :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
토지문제는 기본적으로 농지개혁의 불철저와 외국․도시경제에서 예속되어 농민의 농촌이탈 곧 이농현실이 가속화됨으로써 발생하였다. 당시 소작지는 도시의 기업가․상인․공무원들이 사놓은 땅과 이농하면서 처분 않고 남겨놓은 땅, 농촌에 살지만 고령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내놓은 땅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당시 농가에는 영세농이 많았다. 83년도 말에는 경지규모별 농가호수를 보면 0.5정보 미만이 57만 1,100호로 전체 농가 200만 호의 28.^%이며, 0.5정보에서 1정보의 농사를 짓는 농가는 35.9%이다. 전체 농가의 64.5%가 아직도 1정보 미만의 농지를 갖고 있다. 0.5정보 미만에서 나오는 소득을 계산해볼 때, 이들이 100만원이상의 빚만 지게 되면 특별한 소득이 없는 한 빚은 눈덩이처럼 커갈 뿐 줄어들기는 아주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영세농이 좁은 토지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논이건 밭이건 소작을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소작을 붙이는 농가는 1960년의 26.4%에서 1983년에 56%로 늘었으며, 소작료율은 여전히 고율로 50%에 달했다. 대부분의 농가가 1정보 미만의 토지를 가졌으며, 그 정도의 농토를 가지고는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참고 자료

80年代민중의 삶과 투쟁- 서중석 저
1980년대 한국농민운동 - 장상환 저
해방40년의 재인식Ⅱ- 박현채․한상지 외 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 박세길 저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