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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후한제국의 성립과 호족세력

저작시기 2003.11 |등록일 2005.01.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후한제국의 성립과 호족세력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목차에 있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관련 과제를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음 합니다. 그럼,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맘으로 소개글을 대신합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후한제국의 성립과 사회변화
1. 왕망에 의한 신의 성립

Ⅲ. 후한제국의 성립과 호족세력
1. 후한의 건국과 호족정권의 등장
2. 광무제의 통치정책
3. 외척·환관세력의 재등장

Ⅳ. 후한제국의 붕괴
1. 청류·탁류의 대립과 당고의 금
2. 황건군의 농민전쟁
3. 후한 멸망의 사회사적 의의

Ⅴ. 결 론

본문내용

정치면에서는 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겨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삼고, 전한 이후에 약화된 황제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3공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상서대의 기능을 강화하였다.② 황제의 업무처리를 보필하는 기관으로 환관부를 신설하였는데 이는 환관의 정치관여를 초래하여 다시 환관이 발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와함께 ③전한의 13주 자사제도를 계승하고 그 위에 황제권 강화를 위해 감찰제도를 확립하였다. 사예교위의 권한은 막강하여 백관이 규찰의 대상이 되었고, 황제에게 직접 나아가 관리의 비행과 지방행정의 잘못을 직언할 수 있었다. 경제면에서는 ①민생의 안정을 위해서 징병제도를 폐지하여 병사를 농경에 전념하도록 하고 ②토지의 정확한 점검을 통해 조세를 공평히 함으로써 농민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다만 대토지사유제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고 노비의 해방령을 내리긴 하였어도 매매금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는 후환왕조의 호족적 성격이 정제정책에 그대로 반영된 것을 의미한다. 사회·문화적인 면에서는 ①호족을 회유하고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학을 장려하였다. 낙양에 태학을 세우고 오경박사를 두어 유교를 장려하고 절의와 효렴을 특히 중요시하여 인물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유교적 교양을 지닌 인물이 대거 관리로 등용되었고, 이로 인해 후한시대에는 유교적 예교주의와 절의를 숭상하는 기풍이 사회전반에 풍미하였다.후한시대의 관리 등용에는 군의 태수가 속관을 개편하고 현령을 임명하였기에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참고 자료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연구실 「강좌 중국사」지식산업사
·John King Fairbank, 1994「신 중국사」까치
·민석홍, 나종일,1988「세계문화사」서울대학교 출판부
·김권정, 2001「세계문화사의 이해」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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