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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사론] 황진이

저작시기 2004.03 |등록일 2004.12.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황진이'의 시조에 대해서 쓴 글 입니다.

목차

1. 황진이는 누구인가?
2. 작품세계
3. 황진이 시조의 문학적 가치
4. 나의 생각

==참고문헌

본문내용

15세경 옆집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게되자 죄책감에 기생의 길로 들어선 후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명기로 불리며 숱한 명사들과의 연애담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생불이라 자처하며 10년 동안 면벽수도를 하던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것과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려다 실패한 뒤 사제의 관계를 맺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황진이는 송도삼절이라는 말을 만들어 개성에는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가 있다고 스스로 자처할 정도로 자존심이 세고 긍지 있는 여인이었다.
그는 출생했을 때 방안에 향기가 감돌아 그야말로 선녀였다는 신비화 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당대와 후대에 걸쳐 널리 사랑 받은 인물이었다. 마흔 전후의 젊은 나이로 병사할 때 남다른 유언을 남겼는데 그것은 “나는 천하남자를 위해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죽으면 시체를 동문밖에 버려서 온갖 짐승들이 먹게 하여 천하의 여자들이 진이로써 경계를 하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황진이의 죽음으로 송도 고을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슬픔에 잠겼고 이름 모를 풍류객이 그 시체를 거두어 장단의 남정현 고개에 묻어주었고 선조 때의 풍류남아 백호 임제가 평안도사로 부임해가다 그를 추모하며 시조를 짓고 제사를 지내어 파직 당한 일도 있다.
황진이는 죽은 뒤에도 멋과 풍류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추모되었으며 현재에도 여러 방면의 후대 작가들에게 예술적 감흥을 불어넣고 있는 영원한 풍류의 연인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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