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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묘청의서경천도운동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4.12.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관한 글입니다

목차

1.묘청과 서경
2.고려 인종 대의 정치모습과 풍수지리사상
3.서경세력과 개경세력의대립
4.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대위국
5.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대한 평가
6.주관적 평가 및 맺음말

본문내용

묘청은 정심(淨心)이라 한다. 서경 출생으로서, 검교소감 백수한 을 통하여 근신들과 접촉, 도참설을 이용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다. 1127년 왕실 고문으로 추대되자 왕의 서경 거둥을 주청하여 실현하고, 당시의 혼란한 내외정세를 이용, 개경 출신 구신들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서경천도를 획책하였다. 1129년 신궁을 낙성, 칭제건원을 청하고 금나라 공략 등을 건의하였으나 김부식 등 사대주의자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134년 삼중대통지 누각원사에 오르고 왕에게 천도를 계속 주청하였으나 불가능해지자 1135년 서경에 기반을 두고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여 천견충의군을 조직,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란군은 원수 김부식에게 섬멸되고 묘청 자신은 부하 조광에게 피살되어 개경에 효시되었다
[고려사 속의 묘청]
묘청(妙淸)은 서경의 중인데 뒤에 이름을 정심(淨心)으로 고쳤다. 인종 6년에 일관(日官)인 백수한(白壽翰)이 검교소감(檢校少監)으로서 서경을 분사(分司))하자 묘청에게 말하여 스승으로 삼고 두 사람이 음양비술(陰陽秘術)을 칭탁함으로써 뭇사람을 미혹케 하였다.
정지상도 역시 서경 사람으로 깊이 그 말을 믿고 말하기를, " 상경(上京)은 기업(基業)이 이미 쇠하여 궁궐이 다 불타 남은 것이 없으나 서경은 왕기(王氣)가 있으니 주장께서 옮기시어 상경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 하고, 근신(近臣) 내시랑중(內侍郞中) 김안과 더불어 꾀하기를, "우리들이 만약 주상을 모시고 서경에 옮기어 상경을 삼으면 마땅히 중흥공신이 될 것이니 홀로 일신의 부귀뿐이 아니라 자손의 무궁한 복도 될 것이다."라 하여 드디어 입에 올려 서로 기렸다.
근신(近臣) 홍이서 이중부 및 대신(大臣) 문공인·임경청도 따라서 화동(和同)하여 마침내 왕께 아뢰기를, "묘청은 성인이요 백수한도 그 다음가는 사람입니다. 국가의 일을 일일이 자문하여 행하고 그 진청(陳請)하는 바를 들어주지 아니함이 없으면 정사가 이루어지고 일이 성취되어 국가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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