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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흥취, 무심, 교훈에 따른 자연시가 강독

저작시기 2003.09 |등록일 2004.12.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흥취
무심
교훈

본문내용

(1) 흥취
<이이의 이이가 42세 되던 해에 황해 해주 석담(石潭)에서 제자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을 때 그곳 수양
산(首陽山)에 들어가 그 풍광을 노래한 것이다. 서곡 1수, 본문 9수로 모두 10수의 연시조인데,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지었다 하나 시상(詩想)에 있어 독창적인 면이 엿보
인다. 서곡부터 시작하여 제1곡은 관암(冠巖), 제2곡은 화암(花巖), 제3곡은 취병(翠屛), 제4곡은
송애(松崖), 제5곡은 은병(隱屛), 제6곡은 조협(釣峽), 제7곡은 풍암(楓巖), 제8곡은 금탄(琴灘), 제
9곡은 문산(文山) 등으로 나누어 각각 그곳의 경치와 흥취를 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이 작품의 서곡은 다음과 같다. ꡒ고산구곡담
(高山九曲潭)을 살이 몰으든이, 주모복거(誅茅卜居)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즙어 무이(武夷)를
상상고, 학주자(學朱子)를 리라.ꡓ
고산구곡담 (68-76)>
李 珥 (이 이): 이조때의 학자. 문신이요 호는 숙헌 호는 율곡, 석담, 우제. 어머니는 사임당신
씨. 강릉출생.명종 3년에 13세로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19세때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서를 연구하
다가 유학으로 전향했으며 23세때 이황을 만났다. 명종 19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선조 원년(1568
년) 천추사 서장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후 판돈령부사, 이조판서등을 역임하며 동서
분당의 조정을 위해 힘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이황과 함께 조선유학계의 쌍벽을 이
루는 학자로 기호학파를 형성하고 장구의 분석적 해설보다 근본원리를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통
합했으며 이황의 이기이원론에 대하여 기발이승이도설을 근본사상으로 한 이통기국을 주장했다.
또 10만 군대를 양성하기를 주장했으며(10만 양병설),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했다. 글씨에
능하고 그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율곡전서가 있다.
李 珥 (이 이) 1536-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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