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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B

장미의 이름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4.12.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목차 보시면 아시다시피 구성 잘해놨구요
독후감으로만 6페이지이고 그전이 6페이지 입니다.
사진에 주석까지 다 달려있으니 돈 안아까우실거에요

목차

1.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에 대하여
2. 소설의 사상적 배경에 대하여
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⑵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⑶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
⑷ 움베르트 에코 (Umberto Eco) 의 기호학
3. 『장미의 이름』을 읽고 나서

본문내용

3. 『장미의 이름』을 읽고 나서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장미의 이름을 영화로 보았을 때 윌리엄 수도사의 추리기법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책으로 장미의 이름을 접했을 때는 중세 문화와 풍속, 정치적 상황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소설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327년 요한 22세가 교황으로 있던 성자와 이단자가 공존하는 북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정확한 연대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수도원에 그리스 철학이나 새로운 예술관이 유입되는 시기인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14세기 ‘아비뇽 13세기 성 프란체스코가 청빈 사상을 중심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 정식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내세우는 청빈사상은 재력과 권위를 통해 세속에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황청과 기존의 수도회들과 대립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 헌장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어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프란체스코 파의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한 것.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을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수도사들 역시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을 선언한다. 교황으로서 황제의 임명권까지도 교황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요한 22세는 이 헌장에 대해 1323년 회칙을 발표하여 프란체스코파의 선언을 묵살하는 것으로 그의 입장을 표현하였다. 요한 22세는 청빈을 지지하며 교황권에 도전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외의 몇몇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이로 인해 이미 교황과 크게 대립하여 파문당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드비히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내부에는 청빈을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엄격주의파’-우베르티노-도 있었다.
간에 연대가 이루어져서 황제파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14세기-당시의 교황 요한 22세-에는 ‘아비뇽 유수’ 고대 유대인이 바빌론에 강제 이주된 고사를 본떠 '교황의 바빌론유수'라고도 한다. 13세기 말부터 세속 권력이 신장하자 프랑스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와 싸워 아나니 사건(1303)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 1305년 선출된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으며, 로마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었다. 교황은 초기에 아비뇽 북동쪽에 있는 카르팡트라스에 정청을 설치하고 아비뇽에 거주했으나, 제4대 클레멘스 6세 때인 1348년 프로방스 백작 겸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 왕궁을 모방한 호화스러운 교황청 궁전을 건조하였다. 제6대인 우르바누스 5세 때 일시 로마로 복귀하였으나 교황청의 주요 기능은 아비뇽에 잔류하였고, 그레고리우스 11세에 의해 본격적인 로마 <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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