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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바로 잡아야할 우리 역사 37장면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4.12.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보실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독립운동과 친일파, 이승만 정원에 대한 비리가 주요 내용입니다.

목차

1.2.3. 문학과 친일의 경계
-최남선·이광수·김동인-
4. 3·1운동에서 33인은 ‘민족대표’인가
5. ‘민족대표’ 33인은 왜 비폭력을 주장하였나
6. 브나로드 운동, 누가 왜 하였나
7. 일제하 조선·동아일보는 민족지였나
8.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의 진상
9. 이승만 정권기 미국경제원조의 본질
10. 마치며

본문내용

최남선. 왜곡된 근대주의-"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공약3장의 글귀는 어린 시절 나라의 독립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바라보았던 나의 머릿속에 가장 멋있는 말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말을 지은 육당 최남선이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이때 그의 나이 30세 때의 일이었고 이 사건으로 1921년 10월까지 2년 6개월간이나 옥고를 치루었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의 한명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의 그가 친일이라는 민족반역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1928년 그는 돌연 조선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직을 수락함으로써 변절자라는 지탄을 받기 시작하였다. ‘3·1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이 아닌가. 그런 그가 왜놈에게 붙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최남선을 민족의 양심으로 알고 있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개탄했다. 그러나 자열서에서 최남선 자신은 이것을 변절이라 하지 않고 방향전환에 지나지 않았다고 변명하면서 단지 그것은 돈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무슨 까닭에 이러한 방향전환을 하였는가. 이에 대해서는 일생의 목적으로 정한 학연사업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그 봉록과 그로서 얻는 학구상의 편익을 필요로 하였다는 이외에 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의사가 되기보다 학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학자보다 의사가 되라는 일반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처럼 최남선은 지조와 학식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키고 학식에는 지조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펴려 하고 있다. 농부에게 지조가 필요 없듯이 학자에게도 지조가 필요 없다는 강변을 하고 있는 것인데 과연 학문이란 그런 것일까. 그는 학자인 자신에게 조선 대중이 요구한 ‘지조'는 다만 상식적 기대라고 반박하고 있다.

참고 자료

<바로 잡아야할 우리 역사 37장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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