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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김옥균과 갑신정변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4.12.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김옥균의 생애,사상, 그리고 갑신정변에 대하여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김옥균의 생애와 활동
1) 수학기
2) 개화파형성기
3) 갑신정변기
4) 망명기

Ⅲ. 김옥균의 사상
IV. 맺음말

본문내용

2) 개화파 활동기

김옥균은 22세 되던 1872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는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 승정원 의부승지를 역임하며 뛰어난 학식과 식견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하여 30세가 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차세대 청년 정치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대원권 집권 시기부터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탈 위협에 노출되어 조금씩 위기감이 고조되어가는 상황에 계속되었다. 대원군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강력한 쇄국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는 민중의 애국과 반침략사상에 부합되는 것으로 당시의 불안한 상황으로 볼 때에 유일한 선택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쇄국정책은 현실로 닥친 위기와 불안을 억누르기 위한 것일 뿐, 그것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열강의 침입은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으며 조선은 봉건적 틀 속에서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쇄국 정책은 결코 국가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1870년대 초부터 이미 개화파는 형성되고 있었다. 김옥균은 폭넓은 교류를 하며 유대치, 오경석 등과 함께 개화파의 중심인물로서 근대적 개혁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중인 출신인 유대치와 오경석은 신분의 제약으로 확동무대가 제한되었다. 때문에 정치적 개화파에서 유대치와 오경석은 고문 역할을 하였으며 그 실질적 지도는 김옥균이 담당하였다. 젊은 김옥균은 모든 조건에 있어서 그 뜻을 펼치기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874년, 김옥균은 뜻을 같이하는 김홍집, 어윤중, 이동인 등과 함께 개화사상을 토대로 한 하나의 정치적 세력, 개화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개화파 인물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한 것은 개화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저술활동을 통하여 개화사상을 알리고자 하였다. 김옥균이 저술한 '기화근사'는 박영교의 '지구도경'과 함께 각지에 전파되어 읽혀졌다. 저술활동의 영향력을 컸는데, 이러한 활동은 개화파의 세력 확장과 함께 널리는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개화파의 개혁 초기 모습이 결코 급진적인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참고 자료

북한사회과학연구소편. 1990. 『김옥균』역사비평사
심복룡. 1999. 『한국의 정치사상가』집문당
한국정치외교사학회. 1985. 『갑신정변 연구』평민사
한국정치외교사학회. 1995. 『한국 근대 정치사의 쟁점』집문당
황문수. 1994. 『김옥균 전기』 문원

주진오. 2003. 「1884년 정변의 정치구조 개편구상」『역사와 현실 47』
이태일. 1979「김옥균의 정치사상에 있어서의 현실성의 한계」
『한국정치학회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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