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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상] 통일신라불상 - 운문사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3.05 |등록일 2004.12.18 | 최종수정일 2015.03.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불교 예술의 꽃, 불상>-
변천과정과 석조여래좌상이 속하는 시기는?
(고구려,백제,신라의 형식을 함께 제시)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소개와 사진첨부
조목조목 부분부분에 대한 설명과 특징첨부
-감상과 마무리
*사진첨부

본문내용

석조여래좌상, 감상
석조여래좌상의 그 모습이 다른 불상과 많이 달랐다. 가장 특이했던 점은 뒤에 표현된 대좌와 광배의 모습이었다.
고려초에는 불상이라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신성화 되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불상 하나에도
그 근엄함과 존엄함을 표현하기 위해 대좌와 광배를 표현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지금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 고려문화유산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석조여래좌상의 인상에서는 다른 일반 불상에서 느끼는 인자함이나 온후함을 충분히 느낄 수 없던 것도
하나의 큰 특징이었다. 그 인상은 내가 많이 접했던 불상의 모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중국인의 얼굴 생김과
비슷하였다. 불상인데도 불구하고 입술을 붉게 칠해 놓은 것이 특이하게 생각되었으며, 가늘게 그려진
콧수염이 중국의 ‘왕서방’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그리고 가늘고 작게 떠진 눈의 모습에서 지극히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눈동자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은 술에 취한 듯 몽롱해도 보였으며, 또는 진지하게 수행을 하다 잠시 졸음이 오는 표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또 다시 ‘불상’이라는 생각으로 들여다보면 부처님 나름의 인상이 풍겨져 나오는 듯도 했으나, 진지함과 인자함 위에 익살스러움이 더해져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보건대, 통일신라때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불상의 모습도 중국의 영향을 상당히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초에 만들어 졌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에서 이어져오는 흐름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듯 했다.

참고 자료

직접 운문사 방문, 사진촬영
통일신라 불상에 대한 참고자료 제시
고구려 백제 불상과의 비교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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