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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사] 일제시대 진주의 교방문화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4.12.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300원

소개글

많은 참고되셨으면 좋겠네요. ^^

목차

Ⅰ. 서론
1. 진주 교방문화의 역사

Ⅱ. 본론
1. 진주기생들의 삼일만세의거
2. 매국노 꾸짖은 진주기생 산홍
3. 교방의 맥을 이은 진주권번

Ⅲ. 결론
1. 교방 문화의 자랑 의암별제

본문내용

진주권번은 현재 우리은행(옛 상업은행) 진주지점 자리에 있었다. 권번의 건평은 500여평 정도였고, 건물 내부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몇 명씩 그룹이 되어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진주 권번에 입학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제한이 없었지만 대체로 열살 전후부터 열 다섯 전후까지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자신의 예능을 살리고 생계를 이어가고자 나이든 사람들이 입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번은 입학은 있어도 졸업이라는 특별한 형식이 없었다. 권번에 다니는 학생은 '학예(學藝)'라고 하는 학습이 끝나면 대부분 놀음채를 받는 '놀음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놀음기생으로 권번에 계속 나와야 했다. 당시 진주 권번에는 50명 정도의 인원으로 3반이 있었다고 한다. 1반은 새로 입학한 학예, 2반은 2년 된 학예, 3반은 3년 된 학예로 편성되어 있었다. '학예'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학습하는 오전반과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는 오후반이 있었다. 권번에서는 주로 '교양학습', '일본어학습', '기예학습'을 받았다고 한다. '교양학습'은 처음에 걸음걸이부터 시작하여 인사하는 법, 앉는 법,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등 기초적인 예의 범절에 대해 배웠는데 필수과목이었다. '기예학습'은 악(樂), 무(舞), 기(器)로 나누어 몇 명씩 조별로 나누어 학습을 했다. 소리는 시조, 단가, 진양조, 판소리의 단계를 배우는데 판소리 단계에 와서는 개별적으로 지도를 받았다.

참고 자료

·경남일보 기획특집 `교방 그 풍류와 멋` / 2004
·(한글번역)진주대관(晋州大觀) / 勝田伊助 著 / 진주신문사 편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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