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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B

[서양사] 부르주아의 타자화-매너, 음식, 맛중심으로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4.12.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부르주아의 타자화의 차별이 어떻게 이루워 졌는지에 관련된 글

목차

서론

본론
Ⅰ. 예절로서의 타자 화.
ⅰ.예절서
ⅱ. 보여주기 위한 예절
ⅲ. 절대왕정과 궁중 매너
ⅳ. 차별 또 한번의 차별
Ⅱ. 맛에 의한 구별 짓기
ⅰ. 미각(감각)으로서 구별 짓기
ⅱ. 이성으로 구분 짓기-시각, 어휘,(맛 이외의 것들…)-
ⅲ. 미식가
Ⅲ. 가정과 명예
ⅰ. 하층민의 구분 짓기
ⅱ. 명예를 만회하기

결론

본문내용

ⅲ. 절대왕정과 궁중 매너
절대왕정이 시작되며 중세 봉건제를 경제적 기반을 지탱하던 장원제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봉건영주는 그 토지의 권리를 왕에게 헌납하며 그 대가로 자신들의 지위를 약속 받는다. 그러나 그 지위를 위협하는 부르주아가 성장함으로써 귀족들은 자신들을 구별 지으려는 노력을 감행한다. 이는 살롱을 등장 시키게 되고 그 속에서 귀족들은 자신들만의 품행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층 역시 이를 모방하게 되고 절대왕정은 중간에서 이것을 이용한다. 자신들만의 예절은 오직 사적인 관행에서만 꽃피는 독특한 천성이 되어버린다.『같은책』, p.258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예절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못하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귀족은 왕에게 더욱 근접해야 하며 이를 이룰 수 있는 수단은 궁정매너였다. 절대왕정은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무절제의 통제와 예절 규범의 제도화를 통해 귀족의 방탕한 생활 태도를 억제하고 도덕적·정치적 특권에 대한 요구를 좌절시키며 사적인 연대 관계를 분쇄하려 했다. 궁정은 이런 재정복의 귀결점이자 가장 안정된 형태였다. 대신 절대 군주정은 귀족에게 사회적인 우위라는 가시적인 특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그 대신 귀족은 최고의 권위자인 왕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에티켓의 존중과 의복, 말투, 심지어 몸짓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은 집단적으로 승인된 요구사항을 똑같이 따라야 했다. 춤은 아마도 품행을 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신체적 기술이었을 것이다. 몸짓의 수사학을 기호화함으로써 이런 사회적 기술은 집단적 규범에 부응하는 겉모습을 강요하기 위해 사실상 육체의 존재 자체를 망각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런 절대적인 외향화는 끝이 없었다. 궁정인 들은 이전세대의 살롱인 들처럼 자신들이 선택하며, 궁정이 그것을 요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테오도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김태우 역, 강, 1999
로제 샤르띠에, 『사생활의 역사3』, 이영림 역, 새물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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