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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의 생애와 사상

저작시기 2004.12 |등록일 2004.12.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생애

Ⅱ. 시대․사회적 배경

Ⅲ. 최제우의 사상
1. 도덕적 근원으로서의 천관-수운의 한울님
2.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관
⑴오심즉여심
⑵천심즉인심
⑶시천주
3. 천주와 인간의 조화로서의 지기―우주관
4. 최제우에 의해 확립된 동학사상
⑴ ‘다시 개벽’과 ‘무위이화’로 대변되는 혁세사상
⑵ ‘시천주’와 ‘수심정기’에 나타난 평등사상
⑶ 척왜양의 민족주체사상
⑷ 병치사상과 유무상자사상
⑸ 정감록적 피란사상과 예언사상

Ⅳ. 사회적 영향

Ⅴ. 평가

본문내용

수운 최제우(1824~1864)는 1824년 (순조 24, 갑신) 10월 28일 경주 가정리(현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 1리)에서 부친 최옥(1762~1840, 호 근암)과 모친 곡산 한씨 사이에서 만득자(최옥의 나이 63세에 태어남)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복술이며 본명은 제선이고 제우는 1859년 고친 이름이며, 자는 성묵이요, 호가 수운 또는 수운제이다. 그의 모친은 부친의 세 번째 부인이었으나 과부였으므로 정식 혼인을 한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최제우는 재가녀의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최제우는 퇴계 학통을 이어 영남 일대에 어느 정도 명성이 있던 부친 슬하에서 수학하여 상당 수준의 유교적 교양을 닦았으나, 10세 때 이미 모친상을 당하고 17세 때는 부친상마저 당하여 지속적으로 학문을 닦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19세(1842년)에 울산에 살던 밀양 박씨 부인을 맞이하였다. 21세 때부터는 장삿길을 떠나 주류입로의 생활에 나섰다. 이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심과 풍속을 살피는 생활이 31세까지(1854)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최제우는 이미 지니고 있던, 개인적인 고뇌와 자신이 목격한 혼란한 시대상으로 인하여 갖게 된 고뇌 등 이중의 고뇌를 안으며 그 해결을 위한 방황을 계속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약 10여 년에 걸친 방황의 기간 동안 해결의 방법은 마련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2세(1856년)에는 양산 통도사 내원암 근처에 있는 자연동굴 천도교 측에서는 숙멸굴이라 부르고 있다.
에 들어가 49일간의 기도생활을 하고, 그곳에서 또한 새로운 종교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들 역시 최제우 자신의 고뇌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최제우는 36세 때인 1859년 10월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1854년 이후 몇 년 동안 살았던 울산 처가로부터 용담 옛집으로 돌아왔다.

참고 자료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교육부, 제 6차 교육과정
『동학사상의 새로운 조명』,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8
『동학의 현대적 이해』, 한국동학학회 편, 범학사, 2001
『세계철학대사전』, 교육출판공사, 1988
「수운 최제우의 사상 속에 나타난 도덕 교육에 관한 연구」, 조윤하, 한국교원대학교 석사 논문, 1993
『최제우의 동학사상』, 숭산 박길진 박사 고희 기념 한국 근대 종교 사상사, 이현희, 1984
『최제우의 인간관, 철학적 인간관』,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최동희, 1985
『최제우의 역사의식과 인간관』, 상명 여자 대학교 논문집20, 황선희, 1987
『최제우의 후천 개벽적 이상사회상』, 한국사 시민 강좌10, 신일철, 1992
『수운 최제우의 생애와 사상』, 동학연구2, 신인철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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