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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취락과 방어시설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4.12.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선사시대의 취락
선사시대의 방어시설

목차

1.머리말
2.선사시대의 취락
3.선사시대의 방어시설
4.맺음말

본문내용

청동기 시대의 주민들이 살았던 주거지는 한반도의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한 주거지들은 취락생활의 결과 대부분이 무리지어 발견된다. 간혹 단독 주거지가 발견되는 예도 없지 않으나 그러한 경우는 드물며, 이 경우도 발굴이 덜된 것 뿐이지 전부 발굴한다면 반드시 그 주위에서도 다른 주거지들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주거지들은 적게는 수 기에서 많게는 수백기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주거지의 숫자를 기준으로 하여 추정될 수 있는 주거지군의 규모는 대체로 취락이 입지하는 지형지리적인 형세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청동기시대의 취락의 입지와 규모는 마치 요즈음의 농경취락의 입지 양상과 비슷하다. 즉 요즘처럼 서해안 지방같은 평야지대에서는 대규모의 농경부락이 발달하고 강원산간지방같은 농경지가 협소한 지역에서는 취락의 단위도 작아지는 것처럼, 청동기 시대의 취락의 규모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서해안 지방의 평양시 남경유적이나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들과 같이 수십 기 이상의 주거지가 발견되기도 하고, 강원도 양양의 포월리 유적처럼 십여 기가 모여있는 경우도 있다.
취락의 이해의 한 방편으로서 고인돌의 분포양상을 들 수 있다. 고인돌도 한 두기가 산재하여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적게는 수 기, 많게는 수백기가 모여 있는게 보통이다. 이러한 고인돌도 한반도 서쪽에서는 수백 기나 수십 기 이상이 모여 있는 반면, 강원도 지방에서는 겨우 수 기나 십여 기가 모여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취락의 규모와 농경 취락생활 집단의 인구규모가 지형적인 입지 형세와 연관이 있음을 반영한다.

참고 자료

고승제, ⪡한국촌락사회사연구⪢, 1979, 일지사
이성주, ⪡환호집락과 농경사회의 형성⪢, 1998, 영남·구주고고학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 - 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 1997,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 -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1997,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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