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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탈춤] 국어학의이해-탈춤(가산오광대)

저작시기 2004.04 |등록일 2004.12.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가산오광대 자료입니다. 직접 비디오도 고서도 보고 직접 작성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탈춤의 기원 및 형성
2.탈춤의 분류
3.탈춤의 성격
1) 개방적 민중성
2) 유 랑 성
3) 민중적 전형
4) 여성의 권리 회복
5) 세시 풍속으로서의 탈춤
4.탈춤의 공연 방식
1) 상연시기와 시간
2) 탈판
3) 대사, 노래
4) 연희내용

Ⅱ. 본론
1.가산오광대의 유래
2.가산오광대의 특색
3. 가산오광대 탈춤의 등장인물 및 도구
4. 가산오광대 탈춤의 내용
4. 가산오광대 탈춤의 특징
Ⅲ. 요약

본문내용

Ⅱ. 본론

1.가산오광대의 유래

가산오광대는 조선조때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서 발상한 탈놀음으로 약 2~3백년의 전통을 가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이 전래되어 왔다. 가산리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조창이 있었던 곳으로 인근 7개군의 세곡을 징수하여 이곳을 통해 제물포로 운송하던 항구였으며 그 당시는 약 3백여호의 대취락지로서 큰 시장이 형성되어 인근지방을 비롯한 타지방 항구와도 교류가 많았던 곳이었으며 한때는 조창오광대 현재는 가산장터대신 인근에 완사장에서 옛날 조창에서 볼수 있었던 시장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수 있음
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가산에는 한씨가 정착한지 11대에 이르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현재 전해지고 있는 동제인 천용제 제물포로 가기 위해서 수일을 가야 했고 한해의 평온을 위해서 천용제를 지냈는데 천용제는 저월 초하루 첫 새벽을 밝히기 시작하여 지금도 옛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한해도 거름 없이 행해 지고 있다. 천용제를 지내고 난후 제물을 땅에 묻고 돌로 표시를 한후 다음해 천용제까지 돌을 건들이지 못하는 금기사상이 있다. (kbs <한국의 미-가산오광대>)
의 과정에서 성황신(城隍神) 다음에 모시는 상신장과 하신장의 석장승 그리고 부락민의 생명수 구실을 하고 있는 방갈새미(井)에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고 있다. 음력 정월초하루에 모시는 천용제 직후 당제후 석장승제가 올려 지는데 상신장4, 하신장4 모두 8개로 남장승, 여장승이 나란히 서있어 마을의 평온을 빈다. 정월 14일까지 지신밝기가 이어져 마을 사람이 단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터 시작하는 지신밟기가 15일에 노는 오광대 놀이까지 연결되는 것을 보더라도 이 놀이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그 어느 지방의 탈놀음보다 가장 최근까지 전승되었는데 1960년에 연희된 것이 최종막이었다.
가산오광대가 1960년 이후부터 중단되었던 것을 동아대학교 교수 강용권박사가 1971년에 발굴하여 재연시켰으며

참고 자료

1. 徐淵昊, 야유․오광대 탈놀이 한국의탈놀이③, 悅話堂, 1994
2. KBS 미디어, 한국의 미(가산오광대), 2001
3. http://www.mask.org/korean/kor_gasan.htm(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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