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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나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4.12.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발표준비때문에 아주 열심히 준비한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任那日本府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1. 임나일본부설의 정의
2. 임나문제의 근거 사료
3. 임나문제의 새로운 움직임
4. 임나문제에 관한 제연구
5. 임나와의 관계의 성립과 발전

Ⅱ.『日本書紀』`任那` 기사의 기초적 검토

1. 『日本書紀』의 `임나`기사 검토의 유의점
2. 『일본서기』의 `임나`의 용법
3. `任那` 멸망 이후의 `任那` 문제

Ⅲ.廣開土王陵碑 및 『三國史記』에 보이는 `倭兵`의 正體
1. 廣開土王陵碑에 보이는 倭兵
2. 『삼국사기』에 보이는 倭兵
3. 맺음말

Ⅳ. 騎馬民族說에서의 韓·倭연합왕국론 비판
1. 기마민족설 개관
2. 한·왜 연합왕국론의 문제점

Ⅴ. 考古學的으로 본 伽倻와 日本의 관계
1. 日本 古墳時代 中期의 새 文物과 源流
2. 영남지방 고분문화의 변동과 일본고분시대 중기 새 문물의 성격

본문내용

2. 『일본서기』의 `임나`의 용법

(1) 金官國(김해)
`任那` 가 일본에서는 `미마나`로 발음되었음은 仁紀를 통해 확인되는데, 5세기에 가야지역의 남부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임나`가 계속 사용된다. `가라`는 고령의 대가야로서, 북부의 대가야와 구별하여 남부의 가야의 중심이었던 금관국을 부르는 말로 `임나`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서는 김해의 금관국을 `南加羅`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일본서기`에서 가야지역 전체를 `임나`로 부르게 된 결과로 5,6세기와 7세기 초의 일본에서의 명칭은 `임나`였다.
(2) 가야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
`일본서기`에서 `임나`가 가야제국의 총칭으로서 쓰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일본과 최초로 관계가 있었떤 가야국이 임나(금관가야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야국들도 `임나`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6세기 당시의 `임나`는 금관가야를 말하는 것으로, 가야제국을 총칭하는 `임나`는 6세기에 실제 쓰이던 말이 아니라, `백제본기` 또는 `일본서기`의 편찬자가 쓴 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본서기`의 광의의 `임나`기사들은 신라나 백제와 구분되는 하나의 세력권이 가야지방에 있었던 사실을 반영하고 있으나, 이들 모두가 대화 조정과 관련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5~6세기의 한반도 남부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지 않았던 소국들을 총칭한다는 견해가 무난하다.
(3) 백제왕의 통치지역
`일본서기`의 신공기(神功紀)·응신기(應神紀)·웅약기(雄略紀)·계체기(繼體紀)에 천황이 백제왕에게 토지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앞의 두 기록에서는 단순히 토지를 하사했다고 하지만, 뒤의 두 기록에서는 `임나`의 토지를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앞의 경우에도 천황이 하사한 토지는 `임나`의 토지였다고 생각하여 `임나`는 가야지역뿐만 아니라 충청·전라도도 포함한다고 추정하였다. 이를 통하여 `임나`는 백제왕의 통치지역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 임나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사 시민 강좌 11>, 김현구, 일조각
『일본서기』`임라`기사의 기초적 검토 <한국사 시민 강좌 11>, 김은숙, 일조각
광개토왕릉비 및 삼국사기에 보이는 `왜병`의 정체 <한국사 시민 강좌 11>, 이종욱, 일조각
기마민족설에서의 한·왜 연합왕국론 비판 <한국사 시민 강좌 11>, 이기동, 일조각
고고학적으로 본 가야와 일본의 관계 <한국사 시민 강좌 11>, 최승현, 일조각,
임라일본부설에 대한 비판적 연구, 이근우, 198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임라일본연구, 김현구, 1993,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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