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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왕조의 유교적 중농정책

저작시기 2004.11 |등록일 2004.12.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시대 초 인구증가와 농업기술발달, 의술발달을 서로 연계하고 이를 고려시대와 비교하며 설명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성리학과 신흥사대부
2. 토산약재를 이용한 향약의술의 발달
3. 휴한법에서 연작상경법으로의 변화
4. 세종대의 과학연구
5. 사회운영방식과 정치체제의 변화

Ⅲ. 결론

본문내용

지금까지 조선왕조의 유교적 중농정책과 그로 인한 사회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의술과 인구적 요인은 농업기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새 왕조와 신흥사대부는 지배계층의 변화로 동요하고 있는 사회에서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이들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촌락단위의 농업경제력 신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인구와 농업의 관계를 닭과 달걀의 관계로 보고자 한다. 14세기부터 발달추세를 보인 농업기술은 인구증가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고, 집약농업 하에서 인구증가는 농업노동력의 증가로 이어지는 순환영향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태진,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태학사, 2002, p.407.
따라서 이들 모두가 증가하기 위해선 외부적인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13세기부터 발달한 의술이 했다고 생각한다. 앞의 비유를 연장하자면, 의술은 ‘부화기’나 ‘어미닭의 좋은 영양상태’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연관관계가 우리가 주목하는 고려말·조선초의 시대적 상황이다. 이를 뒷받침하였던 성리학 정신에 입각한 신흥사대부와 조선왕조의 주도적 노력까지 보게 될 때, 우리는 당 시대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 한 발짝 더 다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이태진, 『의술과 인구 그리고 농업기술』, 태학사, 2002.
― 『조선유교사회사론』, 지식산업사, 1989.
― 『한국사회사연구』, 지식산업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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