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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고려시대의 혼인 -일부다처제를 비판적으로

저작시기 2003.12 |등록일 2004.09.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서론
2.연구사검토
3.사료를 통한 고려 혼인제의 재검토
4.고려후기 정지적배경, 사회경제구조
5.결론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혼인이란 당사자의 성적·심리적·경제적인 결합을 뜻하는 중요한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기초적 구성단위인 가정·가족을 형성하는 단서가 되며, 나아가서는 종족보존의 중요기능을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가 어떤 형태로든지 혼인을 승인하고 이에 법적으로 규제를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혼인이 없었던 나라는 없었고 수 만년을 지난 오늘날에도 혼인은 건제하다. 그만큼 혼인이란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사회제도의 하나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 나라의 학계에서는 혼인제도에 대한 분야가 지나치게 소홀하게 다루어져 실증적 연구가 빈약한 단계이다. 또한 혼인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료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의 폭이 현저하게 좁아진다. 고려시대의 혼인제도에 대한 사료는 신라시대의 연구처럼 법조문과 왕실 자료에 근거하여 그 당시의 혼인이 논해지고 있고, 고구려의 경우처럼 중국인이 남긴 책에 언급된 몇몇 문구가 주요 단서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왕실자료의 특수성, 법조문이 가지는 실제와의 괴리성과 불확실한 인물이 쓴 사료 때문에 고려시대의 혼인은 아직까지 논쟁이 되고 있을 뿐 명쾌한 모습은 합의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개념과 사료의 해석이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본고에 들어가기 앞서 필자는 일부다처와 처첩제의 개념의 정리 명확히 하고자 한다.
처첩제는 1인의 남자가 복수의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이므로 다처제의 일종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처와 첩의 지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처의 경우와는 달리 첩의 가족과 인척관계를 성립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부일처제의 변형으로 보여진다. 처첩제는 일부일처제가 행해지는 사회에서도 동시에 보여지기도 함으로 일부다처제와는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른 것이라 하겠다.

참고 자료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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