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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대약진 속의 경제정책으로서의 인민공사

저작시기 2004.05 |등록일 2004.08.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1. 들어가면서
2. 대약진의 배경
3. 대약진과 그 안의 인민공사
4. 대약진의 실패
5. 나가면서

본문내용

중국 공산당은 토지개혁의 성공에 힘입어 당국의 지도하에 1952년에 농업발전을 위한 호조합작운동을 시작한다. 호조합작운동이란 우리 나라의 두레와 유사한 것으로 토지와 가축, 농기구 등의 대부분 생산 자재는 사유를 인정하면서 일부 생산자재는 공동으로 이용하는 부분협업형태이다. 이미 중국에는 농번기에 몇 개 농가가 서로 노동을 교환하는 단순한 형태의 호조조가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1952년경 호조조에는 전체농가의 약 40%정도가 참여하였고, 1954년말에는 60%의 농가가 호조조에 조직되었다. 당시 1개 호조조에는 4-5개 농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집단농업경영방식으로 이행하는 첫번째 농업단계로 당시 반수에 가까운 농민이 호조조제에 가입되어 생산자재의 부분공동이용을 통해 농업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호조조에 소속된 농가는 모두 개별적으로 국가에 대하여 납세 및 농산물 수매임무를 부담하였으며, 구성원간의 부채는 호조조 내에서 수행된 노동을 평가함으로써 변제하였다.
호조조의 보급과 함께 초급합작사 제도도 도입되었다. 초급합작사는 20-30호의 농가가 토지, 가축, 농기구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풀(pool)제도였다. 토지 등 생산수단의 사유는 계속 인정되었고, 합작사는 토지사용의 대가로 지대(地代)를 지불하였다. 역축 및 농기구의 사용에 대하여도 원칙적으로 토지의 경우와 같이 대가를 지불하되 합작사는 합의된 가격으로 이를 매입하고자 하였다.
초급합작사는 국가계획에 의거하여 자본과 농작업을 집중관리하였다. 초급합작사의 운영은 집행부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 구성은 호조조 규모의 생산조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초급합작사는 호조조나 자영농에 비하여 토지를 계획적이고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게 되었다. 또 조직적 노동에 의하여 관개, 축대, 배수로 작업 및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작업들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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