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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한국역사] 광개토대왕비

저작시기 2000.10 |등록일 2004.08.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고구려 역사 왜곡이 문제가 되는 이 시점에 한번 돌이켜 보며 레포트를 쓴다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 광개토대왕비문의 진상
1) 사까와 쌍구가묵본
2) 원석정탁본
3) 석회칠이 된 1918년경의 능비 모습
4) 석회가공탁본
5) 석회가공탁본의 `왜만왜궤`
6) 최근의 대표적 탁본
7) 신묘년기사의 진상(眞相)
*. 광개토대왕 비문
*. 비문의 왜곡시기와 왜곡한 사람에 대한 논의
*. 한국과 일본, 교과서 대 교과서
*. 광개토대왕비가 보여주는 사실들 (4c말~5C초)
*. 맺는말-능비의 연구과제와 광개토경의 역사적 의미

본문내용

(비문 1면8,9행을 본다)

*.8,9행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가정 --> 첫째, 문장 전체의 주어를 倭로보고 '왜가 신묘년(391)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야,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을 삼았다'고행석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4세기 후반의 왜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가 사실화된다. 이 같은 내용을 일본 서기의 임나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용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는데 있어 주의되는 점이다.
둘째, 앞부분의 주어는 倭로, 뒷부분의 주어는 고구려로 보아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백제(또는 왜)를 격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비문을 놓고 이진희(재일 사학자)는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3회에 걸쳐 일본 역사에 유리하게 비에 석회칠을 했다는 변조설을 제기하였다. 한편 중국의 왕건군(王健群)은 비문 변조설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비판하고, 이 비는 오히려 임나 일본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물로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아직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구경신에 의해 반입된 '쌍구가묵본'을 처음으로 해독한 일본 참모본부의 촉탁 요코이(횡정충직)는 '신묘년기사'를 “ぢ백잔신나구시속민유내조공 이왜이신묘연내도해 파백잔0 0 신나이위신민”으로 석독하고({회여록}5집,1989), 이를 바탕으로을 바탕으로 나가통세등 어용학자들의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이어서 조공을 해왔는데 왜가 신묘년부터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라, 신라를 정복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는 요지의 해석이 오랫동안 정설로 인정되어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삼한정벌론과 결합되어 임나일본부설의 가장 중요한 논거가 되었으며,전후에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이러한 견해가 수정되지 않은채 계속 주장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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