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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의 정약용의 생애와 새로운 해석

저작시기 2004.08 |등록일 2004.08.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정말 열심히 정리한 자료에요..^^

많은 참조 바랄게요...

목차

1. 정약용의 생애
2. 실학(實學)이란 학문에 눈을 뜬 정약용
3. 난세(亂世)에 관직에 진출한 정약용
4. 18년간의 유배생활
5.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
6. 현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정약용

본문내용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경기도 초부면 마재(현재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조선은 영·정조 시대라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었다. '탕평책(蕩平策)'으로 극심했던 당파싸움은 다소 잠잠해진 상태였고, 농기구와 수리 기술의 발달로 농업 생산량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화폐 이용이 늘어나고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상공업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조선이라는 꺼져 가는 불꽃의 마지막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진 듯했지만 당쟁은 암투의 형식으로 오히려 격화되고 있었고, 생산량이 늘었음에도 관리들의 수탈은 더욱더 심해져서 백성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해지고 있었다. 사상적으로도 '조선의 국가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자학은 본래의 비판적이고 건전한 정치 이념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명분과 예법만을 중시하는 '학문을 위한 학문'으로 전락해 버린 나머지 끊임없는 당쟁의 빌미만 될 뿐이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이 '정치의 중심지'로 올라온 젊은 정약용에 눈에 안 보였을 리 없다.

중략~

그의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자세는 지금도 학문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학자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실사구시]는 결코 '돈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좋은 것'이라는 식의 천박한 실용주의는 결코 아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유학자였다. 그는 진정한 유용성은 도덕성의 바탕 위에서 나오며, 또한 도덕적인 것은 결국 유용한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수양하는 자세로 살았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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