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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국과정

저작시기 2003.10 |등록일 2004.07.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머리말
2.발해의 건국과정
1) 발해의 건국과정
2) 발해 건국당시의 주변의 정세
3) 발해의 건국 년도에 관한 설들

3.발해와 당나라의 대외관계
1) 발해와 당의 무력 대립
2) 발해와 당의 경제적 왕래 및 문화적 관계

4.발해와 신라의 대외관계
1) 발해 건국기
2) 발해국인 항쟁기의 교섭

5.발해와 일본의 대외관계
1) 정치적 관계
2) 경제적 관계
3) 문화적 관계

6. 맺음말

본문내용

1) 발해의 건국과정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였다. 그리고 많은 고구려인들이 당으로 압송되었다. 당의 강제 사민정책에 따른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영주지역으로 압송되었는데 대조영의 집단도 그 가운데 속해 있었다.
696년 5월 거란족의 수령 이진충이 돌궐의 후원을 받으며 봉기하였다. 이진충은 조문홰를 죽이고 영주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무가상한(無上可汗)이라 칭하며 당을 공격하였다. 영주지역은 큰 혼란에 빠졌고, 일부 이 종족 집단들은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탈해 나갔다. 이런 와중에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의 동향은 일정하지 못하였다. 일부는 이 지역에 남아있거나 당군과 함께 행동하였다. 그래서 영주가 다시 당의 지배 아래 들어간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하며 당의 군병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고구려 유민으로 이정기(李正己) 집안은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일부는 이탈하였으나 대조영집단과 말갈족의 걸사비우(乞四比羽) 집단은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진충이 이끄는 거란군은 신속히 북중국의 하북지역으로 남진하였다. 그 해 9월 이진충이 사망하자, 손만영이 무리를 이끌고 당군을 격파하며 크게 세력을 떨쳤다. 수세에 몰린 당은 돌궐에 물자를 제공하며 서로 밀약을 맺어 거란을 양면에서 협공하는 방책을 도모하였고, 돌궐이 이에 응하여 거란의 배후를 기습하였다. 이에 정세가 크게 역전되었다.

참고 자료

박시형, 1979『 발해사』이론과 실천
上田雄, 1994『발해의 수수께끼』교보문고
한규철, 1994『발해의 대외 관계사』신서원
국사편찬위원회 2000『한국사 10』한길사
장국종, 2001『발해국과 말갈족』중심
송기호, 1995「발해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국가적 위상」서울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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